[중앙 시평] 국민 감동시키는 改革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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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조기유학 바람이 불면서 대학 교수 중에도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고 이산가족 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교수 중에는 외국에서 살다가 온 경우도 많아 아이들이 한국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등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남의 자식을 맡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 자식은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은, 마치 자동차회사 직원이 자기가 만든 차를 못 믿어 수입차를 사는 것과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분들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논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에는 아무리 논리가 정연하더라도 전폭적으로 행동을 같이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마치 내기 장기판의 훈수꾼처럼 판이 잘못되면 끝까지 책임을 지기보다 슬그머니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병역 비판했던 방송 社長의 경우

교육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도 이처럼 논리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뢰가 중요한 듯하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위법성 여부를 떠나 과연 어려운 시기에 서민들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할 것인지에 대한 신뢰감의 문제로 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비해 소위 민주화세력은 과거 투옥되거나 고문을 당하는 등 신념을 위해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전력이 있기에, 적어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반대편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이처럼 자기희생을 통해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참여정부 들어와서 여러 개혁정책들이 표류하는 이유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개혁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 예로 과거 언론의 논객으로서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병역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바로 자신의 두 아들이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이 밝혀진 일이 있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앉아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냉소적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말은 아무리 논리정연해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게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언론이 사실 확인에 철저하지 못하고 특히 권력 주변에 대해서는 '의혹'만으로 크게 보도하는 관행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물론 이것은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가 대통령 측근의 보호처럼 비춰지면서 그 의미는 희석되고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측이 기양건설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일이 있는데, 이 의혹은 후에 검찰 수사에서 근거없음이 확인된 바 있다.

만일 당시 노무현 후보 측에서 "근거가 부실한 보도는 자제하자"는 성명만 내었어도 한국의 정치 문화는 한 단계 도약하고, 언론의 보도 태도도 훨씬 신중해졌을 것이다. 자신의 이해에 관계없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할 때에만 국민은 감동하고 사회를 바꾸는 진정한 개혁이 성공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교육 공급자들이 자기희생 해야

우리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인 교육 개혁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교육은 이민 열풍, 원정 출산, 강남 부동산값 상승 등 많은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받을 만큼 불신받고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학생을 볼모삼아 한국 교육을 좌지우지했던 교육 당국이나 교원 단체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들 교육 공급자의 자기희생 없이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보아왔다. 이제 교사나 교수는 한번 임용되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철밥통의 신화를 깨고, 교육 당국이나 학교 운영자들은 과거의 기득권을 내놓을 각오로 임해야 국민이 지지하는 진정한 교육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