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층빌딩 건립…뜨거운 피맛골 재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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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진동 166번지 '피맛골'에 들어설 예정인 20층짜리 고층빌딩을 놓고 지역 상인들과 건설업체 간의 논쟁이 뜨겁다. 상인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평생 삶의 터전인 피맛골을 뜰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반면 ㈜르메이에르건설 측은 "지난달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의 건축심의를 통과했다"며 내년 1월 공사를 강행할 태세다.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길 '피맛골'은 조선시대 말을 타고 종로 대로를 지나던 벼슬아치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싫어 평민들이 피해 다니던 길이란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현재 고층빌딩 예정부지에는 해장국.생선구이.빈대떡집 등 60여개 식당과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상인들 주장=8일 오후 너비 2m 남짓한 피맛골에 들어서자 낡은 밥집 여기저기서 구수한 생선구이와 파전, 고기 굽는 냄새가 시장기를 돋운다.

"나가라케도 못 나갑니더. 평생 손때가 묻은 곳인데."

시원한 대구탕 국물이 별미인 '부산뽈테기'의 주인 최순자(64)씨는 "밥집이 없어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요즘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며 "개발한답시고 돈 없는 사람만 못살게 한다"고 불만이다. 부산뽈테기처럼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가는 대략 45개. 당초 개발예정지에는 60여개 업소가 있었으나 땅 주인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지금은 세입자만 남아 있다.

상인들의 요구사항은 크게 세가지다. ▶새 빌딩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상인들 모두에게 임차권을 보장해줄 것▶공사가 진행되는 3년간 공원부지에 가건물을 짓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줄 것▶피맛골의 옛 정취를 그대로 보존할 것 등이다.

상인대책위원회 고정우(51)회장은 "생계를 보장하지 않을 경우 공사 저지 등 물리적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 입장=올해 말까지 철거를 끝내고 내년 초부터 2천6백18평의 대지 가운데 2천52평에 ▶스포츠클럽▶주점.식당가▶오피스텔을 짓는 공사에 들어가 2006년 완공할 예정이다. 나머지 5백66평은 도로.공원용으로 기부채납한다.

르메이에르 측은 "상인들에게 지하 2층 1천2백여평의 식당가 임차권을 5년간 일부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공원 부지에 임시건물을 짓고 영업하는 행위는 안전상 문제가 있어 상인들이 종로구청과 협의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현재 2~3m 너비의 피맛골 도로를 4~5m로 넓히고, 건물을 통과하는 피맛길은 종로 쪽에 새로 짓는 3층 상가와 새 빌딩 사이에 구름다리를 놓아 보행통로로 사용토록 할 계획이다.

르메이에르 이점세 상무는 "상인들은 다음달 초까지 두달치 임대료에 해당하는 돈을 이주비로 받고 떠나야 한다"며 "더 이상의 요구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yangyy@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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