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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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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일단 찾아오면 30분간 대기하게 해. 바쁘게 일하는 척하면서. 그러다 나중에 ‘어, 왔어요?’ 하지. 그러면 바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와. 또 다른 방법은 옆 회의실에서 한 30분 기다리게 하는 거야. 그리고 가서 아무 말 없이 백지를 내놔. 그러면 첫마디가 이거야. ‘제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가 한참 전 일러줬던 ‘결정적 순간의 대화법’이다. 당국자의 “들어오라고 해” 한마디에 불려 들어온 금융회사 고위임원이 이후 어떤 일을 겪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여럿이 모인 회의자리에서의 비법도 알려줬다. “처음엔 난리도 아니야. 다들 ‘안 된다’ ‘어렵다’ 얘기만 하지. 그럼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가만히 듣고 있어. 그러다 중간에 직원에게 혼잣말하듯 ‘야, 이런 사람들 데리고 회의를 왜 하냐’라고 말해. 그러면 그다음부터 반응이 ‘어렵지만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로 바뀌어.”

물론 관치의 서슬이 퍼렜던 옛날얘기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금융회사 관계자가 당국에 불려 들어가거나 긴급히 소집되는 일은 여전히 적지 않은 듯하다. 실제 호출 전후로 금융회사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를 취재하면서 종종 목격한다.

갑작스런 호출은 갑을 관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들어오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외국인이 CEO였던 한 금융사는 “선약이 있는데 당국이 하루 전에 ‘내일 조찬간담회’라고 통보하면 꼭 가야 하느냐”며 황당해하는 CEO를 설득해 참석시키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비교적 정부 눈치 볼 필요 없는 외국계 기업 출신의 전 금융사 CEO 역시 “금융권에 와서 가장 적응 안 됐던 게 당국의 호출”이라고 토로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들어오라고 하세요” 문자메시지 한줄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카카오 대관 담당자가 의원실로 불려 들어간다고 해서 카카오란 회사 자체가 ‘을’이 되는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다음의 메인뉴스 편집을 더 눈여겨보게 될 듯하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