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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文, 이낙연에 "점심되나"…오찬뒤 "든든하단 말 알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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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화상으로 '한국판 뉴딜펀드 금융권 참여방안 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화상으로 '한국판 뉴딜펀드 금융권 참여방안 보고'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행사 시작에 앞서 이 대표와 인사하면서 즉석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사전에 일정을 정하지 않고 당일에 오찬 약속을 잡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 대표는 기존에 오찬 약속이 있었는데 취소하고 문 대통령 요청에 맞췄다”고 했다.

이 대표와 비공개 오찬 공개 지시 #이 지사 ‘수재민 조립주택’도 두둔 #전문가 “현직 대통령 입장에선 #대선주자 카드 여럿 있어야 유리”

문 대통령과 이 대표는 행사가 끝난 뒤 청와대 상춘재에서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만 배석했다. 3명만 마주 앉았다는 것은 문 대통령이 그만큼 내밀한 얘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 오찬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난 뒤 노 실장에게 “오찬 사실과, 이 자리에서 오간 일부 대화를 대변인을 통해서 알려도 된다”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노 실장이 오찬에서 나와 대변인 등을 불러 서면브리핑을 준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오찬에서 이 대표에게 “든든하다. 언제든지 대통령에게 상의하시라. 주말도 상관 없으니 전화하시라”고 말했다는 내용의 서면 브리핑을 곧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날 즉석 오찬 제안→오찬 일정 공개→항상 소통하겠다는 메시지 등 일련의 과정이 문 대통령이 차기 유력한 여권 대선주자인 이 대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전당대회 직후 이 대표에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하며 “언제든지 편하게 전화해달라. 이 대표 전화는 최우선으로 받겠다”고 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초대 국무총리이기도 했고, 당시 문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전용기를 빌려준 사례 등을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이 이 대표를 각별히 챙기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총리이던 이 대표는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는데, 당시 문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내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처럼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또다른 유력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자 행보가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집중호우로 인한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경기지사가 건의한 대로 임시 주거시설로 조립주택을 활용하는 방안에 중앙부처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언급하는 등 이 지사의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지사가 2차 재난지원금 지원을 두고 문 대통령, 이 대표와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면서 점차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선 '2 대 1'의 구도가 형성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지사는 지난 5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부터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고, 2차 재난지원금도 같은 주장을 했다. 반면 이 대표는 “선별 지급이 신념”이라고 밝히면서 이 지사와 다른 입장을 보였다. 결국 6일 당·정·청이 선별 지급으로 결론을 내리자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라고 적시함에 따라 이 지사는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 3월 16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대책회의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 3월 16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방역대책회의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재난지원금 금액과 지원 대상, 지급 방식에 대해 다른 의견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적은 금액이라도 국민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 피해 맞춤형 재난지원은 여러 가지 상황과 형편을 감안하여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 지사 주장을 그대로 맞받아치기보다는 일부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결국엔 이 대표 주장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지사는 문 대통령 발언 직후 라디오에 출연해 “이미 정해진 정책이 무리 없이 집행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라며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보였다. 이 지사 측근인 한 의원은 “이 지사의 선별 지급 주장은 문 대통령에 각을 세운다기보다는 그의 기본 경제 철학이다. 선별 지급되고 한달만 지나면 이 지사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했는지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문 대통령과 이 대표, 이 지사 사이의 거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으로서는 차기 대선 주자로 여러 카드를 갖고 있는 게 유리하다"며 "문 대통령은 당연히 범친문이자 현 정부 인사였던 이 대표와 심리적 거리는 가깝겠지만, 상황이 변하면 이 지사에게도 신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 측근은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접점이 많아지는 데 대해 “대통령 입장에서 현재로선 여당 대표를 더 각별히 챙기고 소통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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