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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기계음 신고 전화···10대 살린 '신참' 소방관의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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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방재난종합지휘센터.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소방재난종합지휘센터.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삐삐삐…

 지난달 30일 오전 3시50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 재난종합지휘센터 김경환(33) 소방교는 기계음만 들리는 신고 전화를 받았다. 김 소방교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라며 여러 차례 물었으나 신고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단순한 장난 전화일 수도 있었으나 김 소방교는 전화기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보통 응급상황이라면 앓는 소리나 구조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외려 수상해서다.

 말이 들려오지 않는 전화는 약 1분20초간 이어졌다. 그러다 김 소방교는 전화 도중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가 화재로 인한 단독경보형 감지기 소리라는 걸 알아챘다. 희미하게 “화재 발생”이라는 말이 들렸다고 한다. 상황이 다급하다고 판단한 김 소방교는 즉시 현장에 출동 조처를 내렸다.

 이어 김 소방교는 위치추적을 이어가며 신고전화가 걸려온 번호로 20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신고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어쩌다 통화가 연결돼도 대답이 없었다.

 김 소방교의 보고를 받은 장민정 소방장도 마음이 급해졌다. 장 소방장은 김 소방교를 도와 관할 경찰서에 통신수사 등 공조를 요청하는 한편, 신속한 구조를 위해 구조대를 추가 출동시켰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당시 신고 지점이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이었던 탓에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 최초 신고가 접수된 지 약 40분 만인 오전 4시30분쯤 소방대원들은 인근에서 불이 켜진 집을 발견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접근해 보니 창문 너머로 자욱한 연기 가운데 쓰러져 있는 신고자가 보였다. 10대로 알려진 신고자는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다.

 소방서에 입사한 지 올해로 5년 차인 김 소방교는 119상황실에 배치받은 지는 갓 두 달이 된 상태라고 한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에서는 ‘신참내기’인 셈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김 소방교가 만일 신고를 오인신고로 여겼다면 자칫 소중한 생명을 살려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는 “신고 상황별 대처 방법 등 향후 교육에 이번 사례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소방교는 “매뉴얼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소중한 생명을 구해내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각종 신고에 침착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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