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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추미애, 일제히 광복절 집회 허가한 판사 때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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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세균 국무총리는 25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법원의 집회 허가에 대한 질의에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잘못된 집회 허가 때문에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답했다. 오종택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25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법원의 집회 허가에 대한 질의에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잘못된 집회 허가 때문에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답했다. 오종택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8·15 광복절 집회를 허가한 법원에 대해 “(방역이) 다 무너지고,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 총리는 “법원 판단을 어떻게 보느냐”는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잘못된 집회 허가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총리의 발언은 보수단체들이 서울시의 ‘집회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를 겨냥한 것이다. 입법부 수장(국회의장) 출신의 행정부 제2인자가 3권 분립의 또 다른 축인 사법부를 공개 비판한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정 총리 “그 판사님 잘못된 판단” #추 법무장관 “책상에만 앉아서…” #주호영 “8·15집회 책임전가 급급”

작심한 듯한 태도였다. 정 총리는 “신고 내용과 다르게 (대규모) 집회가 진행될 거라는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는데 (법원이) 놓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경제적으로도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거듭 법원을 비판했다.

이종배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있다. 총리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지만 정 총리는 비판 수위를 오히려 더 높였다.

박형순 부장판사를 염두에 두고 ‘그 판사님’이란 표현까지 쓰며 “그 판사님이 코로나19가 확산되라고 그런 결정을 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확진자가 생기고 전파되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며 “법원이 집회를 허가해 경찰이 광복절 집회를 막을 기회를 빼앗아버렸고, 코로나가 전국에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법원 때리기’를 거들었다. 추 장관은 같은 날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상 상황에선 사법 당국이 책상에만 앉아서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며 “(법원이)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으로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통합당 주변에선 “과거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적폐 수사’ 때나, 대법원 징용 판결로 인한 한·일 갈등 국면에서 3권 분립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해온 현 정부의 태도와는 매우 다르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원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정 총리는 같은 날 보신각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집회 자체에 대해 “그 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잘 모른다. 몇 명이 어디서 어떻게 모였는지 잘 모른다”고 했고, “제가 집회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란 말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17일 임시 공휴일 지정 등 정부의 방심이 사태를 키웠다”고 반격에 나섰지만 정 총리는 “그때와 현재 상황이 다른데, 지금의 잣대로 (공휴일 지정이) 옳냐 그르냐를 재단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전날(24일) 같은 자리에서 “(임시공휴일 지정은) 결과적으로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런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던 것과는 태도가 달랐다.

정부의 교회 소모임 허용, 외식·숙박 소비쿠폰 배포 등 일련의 방역 완화 조치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완화 조치 승인과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을 연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정부가 방역을 정치에 너무 이용한다”(무소속 홍준표 의원)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정 총리는 “저를 포함해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인격을 걸고 말하니 믿어달라”고 했다.

이날 예결위는 ‘태극기 부대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감염병예방법이나 민법 조항을 통해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상권까지 행사하는 게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정 총리), “(전광훈 목사 등에게) 최대한의 법정형을 구형하도록 제가 지시했다”(추 장관)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날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대규모 감염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광화문 집회가 모든 원인인 양 책임 전가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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