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츠 왔다갔지만, 시진핑 연내 방한 확답 못 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22일 부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22일 부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의 22일 부산 회담을 놓고 청와대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조기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도 설명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당일 내놓은 협의 결과 자료에서 시 주석 방한 대목을 “공동으로 노력해 고위층 교류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고 소개했다.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청와대의 언급은 중국 측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기 방한 합의” 한국 발표와 달리 #중국은 에둘러 “고위층 교류 노력” #한국 태도 봐가며 ‘조건부’ 가능성 #미·중 갈등 속 한국 우군 삼기 시도

중국 측 소식통은 이에 대해 “나라별로 외교 사안의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한국 측 발표 내용을 중국 측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청와대 발표에 ‘연내 방한’이 명시되지 않았고, 중국 외교부는 신중하게 방한 대목을 담았다는 점에서 중국이 연내 방한을 모호한 영역으로 남겨두려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향후 한국의 태도에 따라 시 주석의 방한 시점이 확정될 수 있다는 일종의 ‘조건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측이 회담 장소로 서울이 아닌 부산을 택한 것을 놓고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양 위원이 서울에 오면 대통령을 예방해야 하고 이땐 방한 문제를 말하는 게 순서”라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서울을 피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6시간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양 위원은 한국을 우군으로 삼으려 시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양 위원이 서 실장에게 “중미 관계의 원칙적인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 압박 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미뤄왔다.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화웨이 제재 동참,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 홍콩과 대만 등 ‘하나의 중국’ 관련 이슈 등이 그렇다. 중국 외교부가 결과 자료에서 “중한 관계가 양호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 건 한국의 이같은 기존 입장에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서 실장은 “코로나19에 대응해 사회·경제를 정상적으로 회복한 것은 시 주석의 탁월한 영도 하에 중국 인민이 성취한 보배”라고도 말했다. 미국으로부터 코로나19 발생을 초기에 은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신 서 실장은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부탁한 것으로 관측된다. 회담에서 서 실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대북 인도 지원과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 등은 물론 정부가 준비하고 있을 또 다른 대북 제안을 놓고 중국에 사전 분위기 조성을 부탁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두 사람은 회담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등에서 협력”에 공감했다. 한국의 관심사인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중국이 지원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런데 WTO는 미·중이 무역 갈등을 벌이고 있는 또 하나의 전장이라서 한국이 중국과 같은 편으로 비칠 경우 오히려 미국의 거부감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서울=강태화·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