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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을 정도 돼야 경영상 어려움? 대법 한마디에 대기업 긴장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에 모인 기아차 노조원들. 연합뉴스

대법원에 모인 기아차 노조원들. 연합뉴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계가 긴장하고 있다. 비슷한 사건이 줄줄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서다.

20일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이 판례를 적용하면 통상임금 산정액이 늘어나는데, 이를 기준으로 그동안의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을 다시 계산하면 그만큼 회사가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기업들이 주장하는 건 ‘추가 지출로 인한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판결은 유지하면서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면 추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리를 만들었다. 이 판례에 따라 아시아나항공ㆍ한국GMㆍ쌍용차 등은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추가임금 지급 부담은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기아차에 대해 대법원은 “4200여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 돈을 직원들에 지급한다고 해서 존립이 위태로울 회사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기아차는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7월 부분파업 당시 모습. 뉴스1

현대중공업 노조의 7월 부분파업 당시 모습. 뉴스1

"단기 재무제표로 판단은 잘못"
대신 목소리를 낸 건 한국경영자총협회다. 경총은 이날 “법원은 단기적인 재무제표를 근거로 ‘경영상 어려움’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전략적으로 경영을 추진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총은 “단기적 재무상황을 넘어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경쟁기업을 이길 수 있도록 선제적 연구·개발(R&D) 투자, 시장 확대를 위한 마케팅, 협력 업체와의 상생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경영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며 “ 현재 코로나19로 초유의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들도 막대한 경영ㆍ고용 위기에 처해 있는 데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판결이어서 사법부 판단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든다”고 밝혔다.

경총이 나선 건 다른 회사의 통상임금 재판을 앞두고 선제적 메시지를 내는 의도가 담겨있다. 경총이 대표적 후속 사례로 꼽는 곳이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2심에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인정받았는데, 기아차 판결 결과의 영향으로 3심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해 800억원대 적자를 낸 점과 조선업 침체 상황 등이‘중대한 어려움’의 근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 회사 사건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법관 13명 중 9명이 현 정부 때 임명됐다는 점도 회사 측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다. 다음 달 퇴임하는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제청을 한 이흥구 부산고법 부장판사도 대학 시절 운동권 경력 등으로 친노동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현대중공업은 만약 기아차 같은 판결을 받게 되면 약 500억원의 지출 부담을 안게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밖에 현대미포조선ㆍ금호타이어ㆍ만도ㆍ두산모트롤ㆍ세아베스틸 등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들 회사의 법정 밖 여론 대응 창구는 경총으로 단일화되는 분위기다. 경총은 “기존의 노사 간 합의한 임금체계를 성실하게 준수한 기업에 일방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추가적인 시간외수당을 부담하게 하는 것을 경영계는 심히 유감스럽게 여긴다”며 “국제경쟁 환경에서의 경영전략을 고려해 대법원이 심의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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