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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여권핵심의 반미 발언이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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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인영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일부에서 면담하고 있다. 이자리에서 이 장관은 한미워킹그룹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김상선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일부에서 면담하고 있다. 이자리에서 이 장관은 한미워킹그룹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김상선 기자

여권핵심 586들 '한미 워킹그룹' 집중 비판 #'남북관계 걸림돌'이라는 인식은 너무 반미적

1.

코로나와 폭염 와중에 심상찮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여당 핵심들이 마치 약속한듯 광복절을 기점으로 일제히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공격좌표는 ‘한미워킹그룹’으로 찍혀졌네요. 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20일 만들어진 미국과의 협의체입니다.
2018년 9월 19일 평양선언까지 나오자 미국이 ‘남북관계 과속방지용’으로 제안한 셈이죠. 문재인 정부가 대규모 북한돕기에 나설 경우 ‘UN제재 등 검토해야할 여러가지를 한번에 협의하자’는 창구단일화 취지도 있습니다.

2.

그런데 여권핵심에선 워킹그룹을 남북관계 훼방놓는 ‘간섭그룹’이라 생각한답니다.
북한에 약속한 지원을 하려고 하면 워킹그룹에서 사사건건 제재위반이라며 가로막는다는 주장이죠. 가로막는다고 느낄만 하죠.
워낙 제재가 촘촘하고 미국이 깐깐하니..통일을 외쳐온 586 입장에선 거추장스럽겠죠.

3.

그래서 일제히 공격에 나섰나 봅니다.
행정부 586 대표주자인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주무로서 선봉. 18일 해리스 미국대사에게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제약한다는 비판이 있다”면서 “워킹그룹 기능을 재조정해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워킹그룹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죠.

이에 대해 미국대사는 “워킹그룹은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잘하고 있다는 얘기죠.

4.

같은 날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첫 출근길에 “(워킹그룹을) 들여다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최 차관은 남북관계에서 독자노선을 중시하는 ‘자주파’ 교수 출신으로 직전까지 청와대 비서관이었습니다.

외교부 입장에선 외무고시 출신도 아니고, 나이도 과장급에 불과한 차관을 맞아 긴장하고 있다네요. 그도 그럴 것이, 외교부는 여권핵심들이 ‘워킹그룹을 바꾸라’고 요구할 때도 뜨뜻미지근했거던요. 대개 보수적인 외교관들은 논리적으로 안맞고 현실적으로 어렵다 생각되면 절대 나서지 않습니다.

5.

이틀 뒤인 20일, 입법부 586 대표주자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거들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란 막중한 자리를 맡고 있는 송 의원은 “족보 없는 UN군”이라며 “남북관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좀 더 도전적이네요. UN사령부는 족보가 있고, 아무리 집권여당이라도 맘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UN사령부는 6.25 전쟁 당시 UN 이름으로 참전한 국제연합군이죠.
국제법적으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전(전쟁을 중단)상태이고 북한과의 정전협정에 서명한 남쪽 대표는 UN사령부입니다. 그래서 UN군이 군사분계선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송 의원이 UN사령부를 공격하는 것은 곧 ‘워킹그룹’을 공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워킹그룹은 ‘제재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실제로 DMZ에서 대북지원을 가로막는 역할은 UN군이 하니까요. 실제로는 미국이 다 하는 셈이지만..미국의 헤게모니는 현실입니다.

6.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이 결재한 사안일 겁니다. 대통령 본인이 8.15 경축사에서 “최고의 안보정책은 남북협력”이라며 대북지원을 강조했으니까요.
물론 대통령은 NL(민족해방)성향 586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겠죠. 정부의 최근 흐름은 확실히 NL스럽습니다. 전후사정을 보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남쪽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정치국회의에서 “어떤 외부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일성 사후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급 위기를 맞은 김정은이 ‘자력갱생으로 내부단속에 힘쓰는 국면’입니다.

7.

국정을 3년간 장악해온 집권핵심들이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진 않겠죠. 그렇다면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요.

첫째, 아직 대학운동권 당시의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그냥 국내정치용으로 애쓰는 척 할 수도 있습니다. 두가지가 동시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암튼 지금은 남쪽도 자력갱생과 내부단속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