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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문제 있는 제품이라면 전 세계가 화웨이 썼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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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미·중 갈등 사이 LG유플러스

LG유플러스 서울 상암동 사옥에 있는 DU(디지털 유닛) 장비를 직원들이 점검하고 있다. DU는 5G 기지국망의 핵심 장비로, LG유플러스는 서울과 경기 북부 지역 기지국에서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LG유플러스]

LG유플러스 서울 상암동 사옥에 있는 DU(디지털 유닛) 장비를 직원들이 점검하고 있다. DU는 5G 기지국망의 핵심 장비로, LG유플러스는 서울과 경기 북부 지역 기지국에서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LG유플러스]

지난 7일 LG유플러스 2분기 실적 발표 행사에서 가장 큰 관심은 화웨이 문제였다. 지난달 22일, 미 국무부 로버트 스트레이어 사이버·국제정보통신 담당 부차관보 말 때문이었다. 그는 언론 브리핑에서 “LG유플러스 같은 회사들에게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에서 믿을 수 있는 곳으로 거래 상대를 옮기라고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무부 관리의 입에서 한국의 특정 기업 이름이 거론된 것은 이례적이다. 5G 장비의 30% 정도를 화웨이 제품으로 쓰는 LG유플러스가 미·중 갈등의 틈새에서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중심망은 국산…보안 이슈는 기우” #4G망과 연계된 5G망 교체 어려워 #미국편 섰다간 중 경제 보복 우려 #G2 대결 격화에 기업 고민 깊어져

이 회사 이혁주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컨퍼런스콜에서 “기자가 우리 회사를 콕 집어 물어보는 바람에 부차관보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보편적인 전략을 언급한 수준이지,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머리를 묵직하게 만드는 ‘잠재적 리스크’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LG유플러스는 올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3조2726억 원, 영업이익 2397억 원의 실적을 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9.2% 증가한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그런데도 주가(18일 현재)는 지난 5월 중순 최고치보다 15% 이상 빠진 상태다. 신은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정치적 노이즈로 인한 우려가 주가에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웨이 이슈는 비단 LG유플러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중 사이에 낀 우리 기업, 나아가 우리 국가의 고민이 녹아 있는 문제다.

“코어망에는 화웨이 장비 없어”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본질이 경제 패권 전쟁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5G 시장에서 미래 표준을 누가 선점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명분은 사이버 보안이다. 통신 이용 정보가 ‘백도어’(시스템에 몰래 접근할 수 있는 통로) 등을 통해 중국 정부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을 내세운다.

그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LG유플러스의 서울 상암동 사옥을 찾았다. 상암동 사옥은 수도권 서비스를 위한 핵심 네트워크 장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시설을 안내한 김기용 정보보호담당(CISO)은 “화웨이 5G 보안 이슈는 지나친 걱정이다. 지금까지 기지국에서 특별한 보안 문제가 발견된 경우가 없다. 공식·비공식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해외 전문가들마저 이 문제의 정치적 성격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5G망 개념도

5G망 개념도

어떻게 자신할 수 있나.
“이동통신망(網)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신호는 단말기-안테나(중계기)-DU(Digital Unit)-코어망(중심망)을 따라 연결된다. 단말기부터 DU까지를 흔히 ‘억세스망’ 혹은 ‘기지국망’으로 부른다. 가입자나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코어망에서 처리된다. 코어망은 자국이나 신뢰할만한 국가의 장비와 기술을 쓴다. 우리도 5G 코어망에는 삼성전자 제품을 쓰고 있다. 화웨이 장비는 코어망이 아닌 기지국망에서만 쓴다. 가공되지 않은 채 송수신용으로 쓰이는 무선주파수(RF) 중계 단계에서 유의미한 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
‘백도어’를 심어놓으면 코어망 접근이 가능하지 않나.
“화웨이가 납품하는 장비는 국제인증기구로부터 CC인증(국제공통기준에 따른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그것도 통신장비 중 최고 등급을 받았다. 우리 자체적으로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지하철을 멈춘 적도 있는 유명한 ‘화이트 해커’(해킹 방어 보안전문가)를 데려와 살펴봤다. 100% 보안이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해외 보안전문기업이나 KAIST·고려대·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적인 검증을 하고 있다. 화웨이 장비는 135개국 288개에 달하는 사업자들이 쓰고 있다. 백도어 발견 사례가 단 한 번이라도 생기면 화웨이는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장비의 운용이나 보수 과정에서 화웨이 인력이 접근할 가능성은 없나.
“설치 후 운용은 철저히 자체 인력으로만 한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의견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화웨이 사람들이 직접 우리 망에 접근할 수는 없다. 5G 통신망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하지만, 망 자체는 외부 접근이 불가능한 폐쇄망이다. 기지국 운영 관리에 대해 국제표준정보보호 관리체계인 ISO27001 인증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모든 망 단계마다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기지국망의 중심은 DU라는 장비다. 안테나와 연결된 장비로, 음성 및 데이터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코어망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화웨이가 공급하는 핵심 장비다. LG는 전국에 50여 군데 흩어진 기지국 중 서울과 경기 북부에서 화웨이 장비를 쓴다. 다른 지역엔 삼성전자·노키아·에릭슨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상암동 사옥 14층에는 데스크톱 본체처럼 생긴 DU 장비를 5개씩 꽂아놓은 철제 랙(rack)이 수십 개 들어서 있다. 장비에는 각종 색깔의 케이블이 복잡하게 꽂혀 있었다. 장비 담당 직원은 “화웨이의 신형 5G DU는 연결 가능한 안테나 수를 기존 18개에서 36개로 늘렸다”며 “이런 대용량 처리 장비는 화웨이가 가장 빠르게 시장에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 장비 가격은 경쟁사보다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성능과 효율성, 안정성에서도 우수하다는 설명이다.

장비 교체 땐 ‘수혈 문제’ 발생

5G 장비를 화웨이에서 다른 제품으로 전면 교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5G망은 4G(LTE)망과 연계된 NSA(Non-StandAlone·비단독) 방식이다. 2013년부터 LTE 기지국에 화웨이 제품을 깐 LG유플러스로서는 5G망을 철수하려면 기존 4G망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 회사 관계자는 “A형 혈액형인 사람에게 B형 혈액을 수혈하기 위해 기존 A형 피를 다 빼낼 수는 없지 않나”며 “설사 이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기에 드는 수조 원의 비용이 주주에게 손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급하게 ‘반(反) 화웨이 전선’에 동참했다가는 ‘제2의 마늘 파동’, 즉 중국의 경제 보복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은 국가적 차원의 고민이다. 화웨이가 한국 기업에 파는 장비는 한해 3000억원 정도인데, 한국 기업이 화웨이에 파는 제품은 반도체와 휴대폰 부품을 중심으로 13조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대다수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화웨이 이슈가 LG유플러스에 당장 큰 타격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도 “개별 기업의 문제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있기도 힘들다. 틱톡·위챗 제재에서 보듯 미국의 중국 견제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한 우리 정부와 기업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뒤처진 5G 기술…미국의 고민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는 미래 산업의 중추 신경인 5G 기술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깔렸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의 주도권은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전망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화웨이가 올해 에릭슨을 넘어 글로벌 모바일 기지국 장비 시장의 최대 공급업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왜 미국에는 화웨이에 대적할 기업이 없는가”라는 기사에서 1996년 제정된 ‘정보통신법’을 이유 중 하나로 지목했다. 무선 통신사업에 진입 장벽을 낮춘 이 법이 중소 통신업자들의 과열 경쟁 및 도산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제품을 공급했던 루슨트 등 장비업체들까지 덩달아 어려움에 빠지며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결과를 빚었다. 현재 5G 시대 경쟁력을 갖춘 미국 대형 통신장비업체는 전무한 상황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초창기 이동통신망 구축 당시 무선통신기술의 난립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유럽이 1987년부터 일찌감치 GSM 방식으로 표준을 통일했으나, 미국은 통신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함으로써 CDMA, TDMA, GSM, AMPS 등이 혼재하는 ‘통신 기술의 서부시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뒤늦게 정부가 나서 5G 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애플에 5G망 구축을 요청했으나, 시장에서는 “5G망 사업을 커피전문점 사업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휴대전화를 만들어온 애플이 성격이 전혀 다른 망사업에 뛰어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