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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녹색금융", 금융사는 "ESG 경영"…대세는 그린

중앙일보

입력

"연일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 및 재산피해에 대한 뉴스를 접하다 보니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입니다. (중략) 기후이상에 따른 파급효과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ESG 이미지. 셔터스톡

ESG 이미지. 셔터스톡

정책이 된 녹색금융…ESG 확대하는 금융권

어느 환경단체장의 말이 아니다.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 때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 발언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위해 환경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와 한국은행·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 UN환경계획금융이니셔티브(UNEP FI)·녹색기후기금(GCF) 등 환경기관 관계자들을 한 데 불러모았다. 손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녹색금융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최근 금융권에서 녹색금융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도입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ESG란 투자 대상 기업이 환경(Environment) 및 사회(Social)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지배구조(Governance)가 우수한지 여부를 따지는 책임투자 의사결정 방식이다.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요소를 충족하는 곳에 자금이 융통하려는 취지로 고안됐다.

올해 은행권서 'ESG 채권' 발행 러시

금융권에선 은행을 중심으로 ESG 도입에 속도가 붙었다. 은행의 ESG 도입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채권 발행이다. 은행은 다양한 채권을 발행해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데, 최근엔 ESG 채권 발행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ESG채권은 친환경 프로젝트 자금조달을 위한 그린본드(Green Bond),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본드(Social Bond), 그 둘을 결합한 목적의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 등으로 구분된다. ESG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은행은 이 자금을 환경·사회문제 해결 등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올해 들어 민간 은행권에서 발행된 ESG 채권 규모는 약 5조3000억원어치다. 국민은행은 원·달러·유로화 등으로 총 4차례에 걸쳐 ESG 채권을 발행해 약 2조1500억원을 조달했다. 우리은행도 총 3차례에 걸쳐 7500억원을 조달했으며 신한은행과 신한금융지주(5억5000만 달러), 기업은행(4000억원, 5억 달러), 농협은행(5억 달러), 하나은행(1억5000만 달러) 등도 빠지지 않고 이에 가세했다.

한 은행 재무관리자는 "ESG 채권을 발행할 땐 '해당 자금을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서약서를 써내기 때문에 은행들은 이 자금을 저신용자나 사회적 기업·환경기업에 대한 대출 지원 또는 관련 사업 지원, 사회공헌 활동 같은 명시된 목적 맞춰 소진한다"며 "올해 은행들의 ESG 채권 발행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PF·금융상품에도 ESG 코드 적용

은행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각종 ESG 연관 사업에 자금을 댄다.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 사업, 바이오매스 사업 등 대형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은행은 제주 한림 해상풍력, 해남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 인천 연료전지 발전 사업에 PF를 지원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대기리 풍력발전사업, 울산 농소 하수처리시설 다양한 사업에 PF를 제공했다. 신한은행 역시 PF 거래 때 ‘환경사회 리스크리뷰’ 절차를 적용해 프로젝트의 환경·사회적 영향을 평가한 뒤 이를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고 있다.

건설사 한양이 한국남부발전, KB자산운용 및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등과 함께 전남 해남군 구성지구 일대에 조성한 태양광 발전소와 썬가든. 뉴시스

건설사 한양이 한국남부발전, KB자산운용 및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등과 함께 전남 해남군 구성지구 일대에 조성한 태양광 발전소와 썬가든. 뉴시스

ESG를 주제로 출시된 각종 금융 상품도 다양하다. 신한은행은 개인고객을 대상으론 전기자동차를 구입할 경우 제공하는 'EV-MYCAR' 대출,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건축물을 리모델링할 경우 제공하는 '그린리모델링대출' 등 상품을 갖춰 고객들의 ESG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하나은행 역시 걸음수에 따라 우대금리를 제공해 고객들의 자동차 운행 감축을 유도하는 '도전365적금'을 내놨다. 기업은행도 대중교통 또는 친환경 차량 이용 실적 등에 연동한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IBK늘푸른하늘통장'을 출시했다. 이밖에 대다수 은행이 에너지신산업자금, 환경개선자금, 환경산업육성자금 등을 지원하는 대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자격요건에도 등장

은행권의 ESG 경영은 앞으로 보다 확대되고 체계화될 전망이다. 각 금융지주가 속속 경영전략의 한 축으로 ESG 목표를 수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회장 자격요건에 'ESG 실천 의지'를 추가했다. 이 회사는 'KB 그린웨이 2030'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ESG 상품·투자·대출 규모를 50조원으로 키우고,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25% 줄인다고 밝힌 바 있다.

신한금융은 2030년까지 20조원을 친환경 녹색 산업 재원에 투자하고, 내부적으로 온실가스를 20% 감축하겠다는 친환경 비전인 '에코 트랜스포메이션 20·20'을 지난 2018년 대외적으로 선포했다. 우리금융도 지주 설립 이후 2년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 지주 차원의 ESG 경영을 더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고객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렸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제는 기업도 사회와 환경 등을 생각하며 지속가능경영에 신경써야 할 때"라며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투자자들 가운데는 ESG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수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생겼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들 역시 ESG 경영을 체계화하고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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