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좋은 집' 살기 편해야 최고다

중앙일보

입력

40평형대에 사는 4인 가족의 평균 신발 수가 무려 72켤레. '설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최근 삼성물산 주택사업부가 직접 3백가구를 직접 방문, 신발장을 뒤져 찾아낸 결과다.

하지만 집에 쌓여 있는 것이 어디 신발뿐이랴. 계절 따라, 유행 따라 버리지 못하는 옷, 그리고 시집올 때부터 쌓아놓은 그릇은 또 어떤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부 김승자(42)씨.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작지는 않은데 수납공간이 좁아 불만이다.

인테리어 개조를 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로 이사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모델하우스마다 따라다니며 구경하고 있다.

김씨는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수납공간이 아예 드레스 룸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고, 신발장도 현관 양면을 차지하도록 만들어 마음에 든다" 고 말했다.

꽤 넓은 단독주택에 살던 주부 유정현(48)씨. 최근 평수를 줄이면서 42층 초고층아파트를 계약했다.

자꾸 방범에 신경이 쓰이면서 경비가 잘되고, 저층에 헬스시설이 갖춰져 있는 주상복합형 아파트가 훨씬 더 편한 것처럼 여겼기 때문.

주부들의 주택 선호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단독주택 아니면 아파트, 또는 몇평형을 선택할 것인가가 주거 선택의 전부였다. 또 자산투자나 증식의 목적이 앞서 '내가 살고 싶은 집' 이라는 항목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나 최근 집값이 안정되면서 주택은 재산 증식 수단보다 기능과 기호를 먼저 생각하는 거주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것.

실제 대림건설이 서울 도곡동 아크로빌 입주 후 주부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3평 가까운 넓이의 드레스 룸이 제공됐음에도 더 넓은 수납공간을 원했으며, 또 부엌도 대부분 불만이 수납공간 부족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공급자들도 평수보다 첨단 설비나 수납공간.실내장식.주거환경 등을 고려해 다양한 유형의 아파트를 내놓고 있다.

아파트 공간도 고정 틀을 벗어나고 있다. 평면이 비정형으로 설계되고, 이에 따라 건물 형태도 직육면체 박스 스타일에서 탈피하고 있다. 방의 배치도 달라져 남향에 부엌과 식당을 배치하고, 전망에 따라 거실이 북쪽을 향하기도 한다. 부엌에는 냄새나는 음식을 따로 조리할 수 있는 보조주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변형 아파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같은 평형이라도 침실을 여러개 두거나, 침실 대신 넓은 거실을 만들기도 한다.

설비의 첨단화도 눈에 띈다. 부엌 조리대를 거실을 바라보도록 한 아일랜드형 주방, 완벽한 환기설비, 막힌 공간으로 여겼던 욕실에 넓은 창을 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중앙대 건축학과 손세관 교수는 "이제 단순한 고급화.대형화만으로는 소비자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없다" 며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는 도시형 저층 연립주택 등 다양한 주거 유형의 개발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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