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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검복 선물 슬프다" 임세원법 사각지대 몰린 의사들 분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월 고 임세원 교수 추모식에서 방문객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고 임세원 교수 추모식에서 방문객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른바 ‘임세원법’의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8년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찌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의료법을 개정했지만, 현장 의료진 안전이 여전히 무방비에 놓였다는 것이다.

임세원법 사각지대 '의원급' 병원 

지난 5일 퇴원하라는 의사를 환자가 흉기로 찔러 사망케한 부산 북구 화명동의 한 의원. 송봉근 기자

지난 5일 퇴원하라는 의사를 환자가 흉기로 찔러 사망케한 부산 북구 화명동의 한 의원. 송봉근 기자

지난 5일 60대 입원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김모(60) 원장은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운영해왔다. 20여년간 종합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다 지난해 개업했다. 사건 당시 진료에 불만을 품었던 환자는 김 원장 병원에서 인화 물질을 뿌리고 흉기 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 병원엔 소동을 제압할 보안 인력이나 경찰에 위험을 알려줄 비상벨조차 없었다. 관련 법은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에 보안 인력 1명 이상을 배치하고, 관할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는 비상벨을 설치하도록 했다. 비용은 건강보험공단이 수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충당된다. 김 원장 병원은 병상이 20여 개라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보안 인력이나 비상벨을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에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도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비상벨 1개 설치에 30만원, 유지하는 데는 연 300만원이 필요하다. 보안인력 1명을 두려면 연간 2000만~3000만원이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을 만나 얘기를 듣고 보완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들 "방검복 선물 현실 슬프다" 

닥터프렌즈 측이 지난 5일 공개한 글과 방검복 사진. '좋아요' 9000개 이상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닥터프렌즈 측이 지난 5일 공개한 글과 방검복 사진. '좋아요' 9000개 이상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반복되는 의료진 피해 사고에 의료계는 의료진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6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채널 ‘닥터 프렌즈’는 지난 5일 “수차례 반복되는 비극이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닥터 프렌즈는 내과·이비인후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각 1명씩 모여 운영하는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이다. 이들은 “지난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방검복 사진을 선물했다”며 “친한 친구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방검복을 선물로 주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성명을 내고 “고(故) 임 교수 사망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참변이 벌어져 의료계가 충격에 빠졌다”며 “(이번 사건으로) 아직도 의료인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고 밝혔다. 의협 측은 ▶의료인 폭행 시 반의사불벌죄 삭제 ▶의료인 진료거부권 도입 ▶의료기관 비상벨 설치와 재정지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참사 되풀이…"예견했던 문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한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는 비상벨이 있더라도 환자의 돌발 행동을 100% 막기 어렵다”며 “고위험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에서도 재활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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