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헤어스타일

중앙일보

입력

1895년 11월 17일 조선에 내려진 단발령은 일반 백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포고였다.

고종이 세자와 함께 솔선해서 머리를 자르고, 관리들부터 우선 머리를 깎도록 했지만 백성들의 반발은 대단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서 볼 때 머리를 자르라는 조정의 명령은 내놓고 부모를 욕보이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손발은 자를지언정 머리는 못자른다" 는 유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단발령 이전까지 우리나라 남성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은 상투머리 아니면 떠꺼머리였다. 혼인한 사람은 상투를 틀어 올렸고, 결혼 하기 전에는 길게 땋아내린 각(角)머리를 말총으로 묶었다.

그래서 '총각' 은 결혼 전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우여곡절을 거쳐 시행된 단발령이지만 단발령은 우리나라 남성의 5천년 헤어스타일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수령이었다.

서양에서도 남성의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이 보편화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프랑스의 기계 제조회사인 '바리캉 에 마르(Bariquand et Marre)' 가 만들어낸 이발기(일명 바리캉)는 짧게 깎은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매달 평균 13㎜씩 자라는 10만~13만개의 머리카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원시부족사회 이래로 인류의 고민이었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두뇌를 보호하는 것이 머리카락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지만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또 헤어스타일인지라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 있어서도 머리카락은 수염과 함께 다양한 미적 실험의 대상이었다.

삭발.장발.난발.변발.단발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수없이 많다.

지난주 일본의 새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헤어스타일이 시중의 화제다.

사자갈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사자갈기 머리' 라고 일본 언론들이 부르는 모양이다. 15년 전 자신의 고향 단골 이발사와 고심 끝에 '창조' 한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발라 뒤로 빗어넘긴 이른바 '리전트 스타일' 을 한 대부분의 일본 정치인들과 너무 다르다.

텔레비전에 비친 이미지가 정치인에게 중요해진 세상인 만큼 남과 다른 튀는 헤어스타일이 고이즈미의 인상을 심어주는 데 한몫을 한 건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튀는 이미지와 성공한 정치인은 별개의 문제다. 색다른 이미지로 주목은 받을 수 있겠지만 뭔가 남다른 알맹이가 없다면 '주책' 소리나 듣고 곧 잊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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