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세자와 함께 솔선해서 머리를 자르고, 관리들부터 우선 머리를 깎도록 했지만 백성들의 반발은 대단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에서 볼 때 머리를 자르라는 조정의 명령은 내놓고 부모를 욕보이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손발은 자를지언정 머리는 못자른다" 는 유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단발령 이전까지 우리나라 남성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은 상투머리 아니면 떠꺼머리였다. 혼인한 사람은 상투를 틀어 올렸고, 결혼 하기 전에는 길게 땋아내린 각(角)머리를 말총으로 묶었다.
그래서 '총각' 은 결혼 전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우여곡절을 거쳐 시행된 단발령이지만 단발령은 우리나라 남성의 5천년 헤어스타일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수령이었다.
서양에서도 남성의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이 보편화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프랑스의 기계 제조회사인 '바리캉 에 마르(Bariquand et Marre)' 가 만들어낸 이발기(일명 바리캉)는 짧게 깎은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매달 평균 13㎜씩 자라는 10만~13만개의 머리카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원시부족사회 이래로 인류의 고민이었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두뇌를 보호하는 것이 머리카락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지만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또 헤어스타일인지라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 있어서도 머리카락은 수염과 함께 다양한 미적 실험의 대상이었다.
삭발.장발.난발.변발.단발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수없이 많다.
지난주 일본의 새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헤어스타일이 시중의 화제다.
사자갈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사자갈기 머리' 라고 일본 언론들이 부르는 모양이다. 15년 전 자신의 고향 단골 이발사와 고심 끝에 '창조' 한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발라 뒤로 빗어넘긴 이른바 '리전트 스타일' 을 한 대부분의 일본 정치인들과 너무 다르다.
텔레비전에 비친 이미지가 정치인에게 중요해진 세상인 만큼 남과 다른 튀는 헤어스타일이 고이즈미의 인상을 심어주는 데 한몫을 한 건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튀는 이미지와 성공한 정치인은 별개의 문제다. 색다른 이미지로 주목은 받을 수 있겠지만 뭔가 남다른 알맹이가 없다면 '주책' 소리나 듣고 곧 잊혀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