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부부재산약정 계약 예비커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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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의견이 이 정도로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부부재산약정을 한다는 소식에 남자 친구들은 모두 '제 정신이냐' 며 미친놈 취급을 하는데, 여자들은 '그렇게 멋진 남자인 줄 미처 몰랐다' 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더군요. "

국내 최초로 결혼 후 재산 관리 방법과 이혼시의 재산 처분에 대해 미리 계약하고 법원에 등기를 신청한 이상호(32).이지용(28)씨 커플.

결혼의 달콤한 꿈을 키우고 있어야 할 이들이 벌써 이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재산 분배 계약서까지 작성한 것에 대해 주변에선 의아해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절대로 이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며 "오히려 이런 약속을 통해 진짜 괜찮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고 자신한다.

● 급여·가사노동 모든 게 반반씩…법원에 등기 신청도 마쳐

심지어 법원측에서도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이 민법 조항(829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접수서류의 양식도 없어 현재 정식접수를 받지도 못한 상황이다.

이씨 커플은 재산이든 가사노동이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부부가 모든 가정 일에서 서로 의무과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고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보다 비능률적이라는 주장.

"한 가정을 이루는 부부는 평등해야 합니다. 어쩌다 설거지 도와주고, 걸레질 한번 해준다고 해서 부부가 평등해지는 건 아니죠. 함께 일구는 재산까지 공유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등이 아닙니다. "

"시댁 식구 결혼식에 50만원을 보내는 남편이 친정 식구 결혼식엔 '30만원만 보내' 라고 얘기하는 게 대부분이죠. 또 힘들게 청소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 몰라라 TV만 보는 남편들. 이런 사소한 불만이 쌓여서 이혼까지 가는 거예요. "

그래서 이들이 재산을 나누는 기준은 모든 것에서 50대 50. 급여.상속.증여.임야.건물 등 공유 재산은 반씩 나누고, 결혼하면서 남편이 산 아파트만 60%의 권리를 남편이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자의 자동차와 적금, 주식은 계속 각자의 소유, 혹시 운 좋게 복권이 당첨된다면 그 당첨금도 당첨된 당사자의 소유다. 이외에 양가의 경조사비도 똑같이, 가사노동도 반반씩 하기로 했다. 약정서의 규정에 어긋난 재산상의 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들이 사문화한 부부재산약정을 이처럼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은 법률회사 '로서브' 가 부부재산계약제도를 이용한 신혼부부를 찾는다는 기사를 보고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 의 사내 커플인 이들은 결혼을 성사시키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이혼을 염두에 둔 재산약정을 맺어서야 되겠느냐는 회사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밀어붙였다.

사실 여기엔 예비남편 이씨가 '너무 예쁜' 예비아내를 위해 큰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첫 데이트 한 달 만에 결혼약속을 할 만큼 한눈에 반한 이들은 "어디 한번 살아봐라, 맘대로 되나" 는 친구들의 비아냥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기 위해 이렇게 약속하는 것" 이라고 당당히 대답한다.

"계약서를 만들고 나니 상호씨에 대한 믿음이 커졌을 뿐 아니라 앞으로 결혼생활에 더 자신감이 생긴다" 는 지용씨는 "많은 여성들은 결혼생활에서 적극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남성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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