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 붕괴 직전, 100만원 주냐" 8차선 도로 막은 포항시민 분노

중앙일보

입력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포항지진 피해주민 약 1000명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한 뒤 7번 국도를 1시간 가량 점거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포항지진 피해주민 약 1000명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한 뒤 7번 국도를 1시간 가량 점거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사거리. 평소라면 부산~강원을 오가는 차량이 운행하던 왕복 8차선 도로를 시민 1000여 명이 막아섰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채 도로를 점거한 이들은 ‘지진도시 어떡할래? 인구감소 책임져라!’ ‘무너진 도시 정부는 재건하라!’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도로 한 쪽에는 ‘포항시 의견 반영 안된 시행령 전면 거부’라고 적힌 약 5m 높이의 만장도 내걸렸다.

포항 흥해 주민들 '지진특별법 개정 촉구' 집회 #“정부과실 명백…‘구제’ 아닌 ‘배상’ 명시해야”

 이들은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으로 직격탄을 맞은 북구 흥해읍에 사는 주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과 시민의견 반영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흥해로터리와 흥해전통시장 등에서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을 마련할 때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정부 과실이 명백한 만큼 ‘피해구제’가 아닌 ‘배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포항지진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집회 참가자들은 부산에서 포항·영덕·울진을 거쳐 강원도로 이어지는 7번 국도도 1시간가량 점거했다. 이는 집회를 열기 며칠 전부터 주최 측이 경고했던 상황이다. 이 때문에 흥해읍 일대 차량 통행이 한때 극심한 정체를 빚기도 했다.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주민 1000여명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는 궐기대회에 참여해 흥해 마산 교차로를 봉쇄하면서 상하행선에서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은 "시행령 개정안에 지진피해 이재민들이 실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빠져있고 피해구제에 관한 내용만 있다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1]

2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주민 1000여명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는 궐기대회에 참여해 흥해 마산 교차로를 봉쇄하면서 상하행선에서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은 "시행령 개정안에 지진피해 이재민들이 실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빠져있고 피해구제에 관한 내용만 있다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1]

 이들의 주장처럼 포항에서는 아직 지진 피해 구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진 직후부터 이재민들의 임시대피소로 활용돼 온 흥해실내체육관엔 아직 텐트 221개 동이 그대로 있을 정도다. 이들은 모두 1992년 지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후 정밀안전점검에서 소파(小破) 판정을 받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포항시는 주택 피해를 소파·반파(半破)·전파(全破)로 나눴다. 재난지원금도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씩 분류해 5만6515건, 643억원을 지급했다.

 이중 주거 지원은 전파·반파 피해 주민에만 한해 진행됐다. 소파 판정이 난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재난지원금만 지급된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민들은 “무너지기 직전인 아파트를 어떻게 100만원으로 고쳐서 사느냐”고 반발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포항지진특별법이 제정돼 피해 구제의 길이 열렸지만, 피해지원금 지급대상자, 지급기준에 대한 법률 개정을 거쳐 오는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피해 신청 접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2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지진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반대 궐기대회'에 사용할 손 피켓 등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1]

2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지진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반대 궐기대회'에 사용할 손 피켓 등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최근에는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열발전소 공사가 중단된 후 현장에 남은 시설물은 인도네시아 업체가 160만 달러(한화 약 19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포항시민들은 증거 보존 차원에서 시추기를 철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지난 16일 “지열발전소 시설물을 보존해 달라”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에 보존 요청도 했다.

 앞서 포항시도 지난 2월 시추기 철거를 미뤄달라고 산업부에 요청했었다. 범대위 관계자는 “포항 지진을 촉발시킨 중요 시설을 철거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포항시민 모두 힘을 모아 시설물 철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 지진은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북쪽 9㎞ 지점에서 발생했다. 포항지진 정부합동조사단은 지난해 3월 20일 포항 지진의 원인을 지열발전소 건립과정에서 촉발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