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실패한 의료정책

중앙일보

입력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 .

곪아터진 뒤에 부산을 떠는 당국의 무책임한 정책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정이 위험수위에 직면했다.

자칫 보건의료서비스의 전면 중단이란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까 우려된다.

의약분업의 시작과 함께 건강보험의 재정문제는 숱하게 지적돼 왔다.

그러나 정부는 어정쩡한 자세로 미봉책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위기의 심각성을 솔직하게 알릴 배짱도,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능력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었지 않은가.

현재 정부와 여당은 의사와 약사의 처벌은 물론 하루 환자수 제한 등을 포함한 여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환부를 놔둔 채 행정력에만 의지한 대증요법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여기서 환부란 비용 유발형 의료구조다.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의 경우 동네의원을 찾은 환자는 2천2백원을 낸다.

나머지 1만여원은 보험공단이 지불한다. 아스피린 한 두 알 먹고 나을 수 있는 경우에도 의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암과 같은 중병환자는 거액의 치료비 절반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의사나 약사도 방문환자 수와 진료수익이 직결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와도 될 환자에게 매일 오라고 권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방치된 소비자와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 속에 4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생기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당국은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를 통해 가벼운 질환의 경우 본인부담금을 대폭 올리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소득층의 반발이 있다지만 이는 보험이 아니라 국가가 세금으로 해결할 문제다.

일하는데 바빠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한 채 보험료만 꼬박꼬박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억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방료와 진찰료가 분리된 현행 제도도 하나로 통합해야 할 것이다.

의사 입장에선 처방료 수익을 위해 약을 먹지 않아도 될 환자에게 처방전을 남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처방료를 없애고 진찰료를 상향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보험료 인상에 대해선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보험료가 의사와 약사의 치부(致富) 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정책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지금처럼 의사와 약사의 수입이 얼마라는 식의 폭로성 발표만으론 호응을 얻을 수 없다.

원론적으론 양심적 진찰과 조제만으로도 의료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

양심진료가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의사와 약사들의 수입이 높다면 그만큼 과잉진료와 편법조제가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의료계와 약계 역시 과잉진료와 부당청구 행태에 대한 자기견제의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적 저항감을 생각할 때 의사와 약사도 아픔을 나누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