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원순 피해자 외면한 비서실…그곳선 직원간 성폭행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혁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혁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연루된 핵심 인사들이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서울시의 묵인·방조 정황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성폭행 혐의로 입건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을 뒤늦게 직무 배제하는 등 과거 성(性)비위 사건을 둘러싼 서울시의 미온적 대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와 비서실 관계자들이 성비위 사건 피해자의 호소를 어떤 이유에서건 외면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피해자 "부서 옮겨달라 지속 요청 외면" #서울시, 피해 공식 접수 안됐다는 입장 #비서실 올해 초 성비위 사건 휘말리기도 #전문가 "말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였을 것"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A씨를 돕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지원단체는 지난 13일 첫 기자회견 당시 “성적 괴롭힘에 대해 피해자는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청하며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서 “동료 공무원도 (박 전 시장으로부터) 전송된 사진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종합하면 비서실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 단체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또다시 발표해 “(피해자는) 2016년 1월부터 매 반기별 인사이동을 요청했다. 번번이 좌절된 끝에 2019년 7월 근무지 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1년에 2차례 이상 서울시에 경보음을 낸 셈이다. 이들은 또 “이후 올 2월 다시 비서 업무 요청이 왔을 때 피해자가 인사담당자에게 ‘성적 스캔들’ 등의 시선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사하겠다고도 이야기했으나, 인사담당자는 문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 서울시가 적극 대처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근무 당시 거쳐간 비서실장 4명…“피해사실 몰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향후 계획 등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향후 계획 등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A씨가 “인사이동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는 2016년 1월부터 2019년 7월까지 비서실장으로 근무한 사람은 4명이다. 서정협 현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2015년 3월~2016년 7월)을 포함해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2016년 7월~2017년 3월), 김주명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장(2017년 3월~2018년 7월),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2018년 7월~2020년 4월)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성추행 피해 사실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 권한대행은 “비서실장 재직 당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어떤 내용도 인지하거나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피해자 A씨를 포함해 비서 채용과 직원 인사 등 비서실 업무를 총괄하는 위치였지만, 피해자 A씨의 성추행 피해 호소와 인사이동 희망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서울시도 일관되게 “성추행 건이 공식 신고 접수된 바가 없었으니 사안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몰랐다는건 설득력 없어, 책임 따져야”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의 모습. 김 국장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비서실 소속 직원의 성폭행 의혹에 따른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뉴스1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의 모습. 김 국장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비서실 소속 직원의 성폭행 의혹에 따른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뉴스1

하지만 이를 두고 서울시 내부에서도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만 접속할 수 있는 내부 행정망에는 박 전 시장 의혹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요청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공무원노동조합 측도 “(서울시가) 전혀 몰랐다는 건 설득력 없는 자기 주장에 불과하다”며 “사전에 몰랐다면 불찰이 큰 것이고, 사실이나 정황을 조금이라도 인지했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무겁게 따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엔 서울시청 비서실 남자 직원이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비서실 소속 직원 B씨는 지난 4·15 총선 전날 동료 직원들과 밤늦게 친목 모임을 가진 뒤 만취한 동료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는 사건의 심각성을 보다 엄중히 판단하고 가해자를 직무 배제해 대기발령조치를 내렸다”며 “경찰에 수사개시통보가 접수돼 해당 직원을 즉시 직위 해제했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시는 “경찰 수사결과와 시 자체 철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엄중하게 처리하겠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다.

관련기사

하지만 이런 약속들과는 달리 당시 비서실과 행정국의 대처를 두고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직원을 사건 발생 직후 비서실이 아닌 다른 부서로 옮겼지만, 직무배제와 대기발령 등의 인사 조치는 일주일 후 언론보도가 나온 뒤 이뤄졌다. 김 국장도 당시 “가해자에 대해 보다 신속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가해자에 대한 인사 조치는 절차상 사건에 대한 경찰통보가 있거나 (시청에) 신고가 있어야 가능해 늦어진 점이 있다”고 해명했었다.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성비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것을 두고는 “개인의 일탈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경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은 권력관계 간에 발생하는 것이어서 구조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며 “조직 내부에서 성추행 등이 일어나는 것을 말을 할 수 없는 구조였거나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에 성비위 사건이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