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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규제 우회하는 사모펀드, 강남 아파트 46채 한번에 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한 사모펀드가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한 것으로 확인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반 개인보다 세금 혜택이 많은 법인 자격으로 주택을 구입해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꼼수 투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19일 420억에 통째로 매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월드타워' 아파트 전경. 네이버 거리뷰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19일 420억에 통째로 매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월드타워' 아파트 전경. 네이버 거리뷰

1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삼성월드타워'를 통째로 매입했다. 이 건물은 11층 높이의 46가구가 사는 한 동짜리 나홀로 아파트로 1997년에 지어졌다. 당초 한 개인이 이 아파트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가 이지스자산운용에 매도했으며, 매입가액은 420억원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년이 넘은 이 아파트의 리모델링을 계획 중이다.

사모펀드를 통한 매입은 다주택자에 대해 강화된 규제를 피하면서 시세차익도 누릴 수 있는 우회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법인에 물리는 세금이 일반 개인에 비해 싸다는 점을 이용한 일종의 '세테크'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인은 영업 소득이든 주택양도소득이든 모든 소득을 포괄과세하기 때문에 주택을 팔 때도 과표에 따라 10~25%인 법인세에 부동산 양도 소득에 한해 10%를 가산한 20~35%의 세금을 낸다"며 "최근 법인 양도세가 올라 내년부터 30~45%의 세금이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최대 70%의 양도세를 내는 개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19일 매입한 '삼성월드타워' 아파트 위치. 네이버지도

이지스자산운용이 지난달 19일 매입한 '삼성월드타워' 아파트 위치. 네이버지도

향후 수익 구조에 대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모펀드 통한 투자는 부동산투자회사법상 리츠와 유사하다"며 "투자자를 모아서 부동산에 투자한 이후에 월세 수익률을 나눠주거나 매각차익을 나눠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홀로 아파트를 통째로 구입한 만큼 리모델링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점도 투자자에겐 매력이다. 아파트 리모델링은 재개발·재건축과 비슷한 절차대로 이뤄진다. 주민들이 조합을 꾸린 뒤 시공사를 선정하고 안전 진단과 구청의 인허가를 받아 사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소유자가 한 사람이라면 주민 동의를 모을 필요가 없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개발사업은 주민 의견을 모으는 데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드는 만큼 이 과정이 생략되면 사업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

단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수평이나 수직증축은 어려울 전망이다. 2종일반주거지역에 들어서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이 최대 250%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단지의 용적률은 333%로 이미 법정 기준을 넘는다. 하지만 낡은 집을 개량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관측이다. 7호선·분당선이 지나는 강남구청역과 180m 거리인 데다 논현동과 삼성동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드물기 때문이다.

수익률과는 별개로 사모펀드가 주거용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것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김 교수는 "금융 당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준 것은 금융 시장을 키우고 혁신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며 "사모펀드가 주거용 주택을 매입해 수익을 내는 것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는 물론이고, 금융위원회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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