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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빚내서 '주식 대박' 노리는 개미들, 무슨 종목 샀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주가 폭락기에 주식 투자에 뛰어든 이경민(가명·34) 씨는 당시 삼성전자 등 3개 종목을 900만원 어치 샀다. 주식 평가액이 불과 석 달 새 1500만원까지 불자 그는 지난달 빚을 내서 투자금액을 3000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투자 대상도 코스닥 종목으로까지 넓혔다. 이씨는 "마이너스 통장과 증권사에서 빌린 돈을 합쳐 투자했다"며 "부동산 투자는 시드머니(종잣돈)가 적어 엄두를 못 내고 주식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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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융자 13조5170억…역대 최고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가열되고 있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전체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지난 16일 기준 13조517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중 최저인 3월 25일(6조4075억원)과 비교하면 111% 급증했다. 주목할 점은 속도다. 지난 3월 말 6조원대인 신용 융자 잔액이 두 달도 채 안 된 5월 중순 10조원을 돌파하더니 6월 12조원을 넘어섰다. 이달 초엔 13조원도 가뿐히 돌파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증가세가 빠르다. 3월 말 이후 113% 증가하며 7조원을 넘어섰다.

신용거래 융자는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거금(신용거래 보증금)을 내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뜻한다. 주로 개인이 많이 활용한다. 연 환산 이자율은 4~9% 정도다(만기 60일 기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15조원 선이던 '예탁증권 담보융자'(주식담보대출) 잔액은 16일 현재 17조5192억원으로 석 달 새 2조원 넘게 불어났다.

신용융자 잔액 많이 늘어난 종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용융자 잔액 많이 늘어난 종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바이오·언택트주 잔액 증가 상위 휩쓸어

최근 '빚투'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건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미가 많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도 한몫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매도가 금지된 상황이라 주가 상승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기대치가 높다"며 "최근 상승세를 연출한 제약·바이오주, 언택트(비대면) 관련주를 중심으로 빚을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신용 융자 잔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종목은 진단키트업체 씨젠이었다. 넉 달간 2039억원 늘었다. 셀트리온헬스케어(1997억원), 셀트리온(1978억원), SK(1597억원), 부광약품(949억원), 셀트리온제약(841억원), 네이버(833억원), 카카오(787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652억원) 등이 증가액 상위권에 포진했다.

신용융자 잔액 많이 늘어난 종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용융자 잔액 많이 늘어난 종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주가 내리면 원금 날릴 가능성도

신용 융자를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투자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주가 상승기에 빚을 내 투자하면 수익률을 그만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 주가가 내려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칫 '반대매매'가 일어나 원금을 날리거나 생돈을 마련해 빚을 갚아야 할 수 있다. 반대매매란 개인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약속한 만기(통상 3개월) 안에 갚지 못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파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의 증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하는 등 시장 불안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증시는 답답한 조정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유동성이 정책적으로 더 늘고 경제지표가 크게 개선되거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는 모습이 나와야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빚투' 규모가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 융자가 늘어나는 건 맞지만, 이는 주가 상승의 결과물로 해석해야 한다"며 "국내 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약 1800조원)의 1%도 채 안 돼 위험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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