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혐의로 국내에서 형사고발 됐다.
지난달 16일 북한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문을 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김 부부장이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 지 사흘 만에 이뤄진 조치였다.
‘최서원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고발 나서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경재 변호사는 김 부부장과 박정천 북한 군 참모총장에 대해 형법상 폭발물사용 및 공익건조물파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은 우편 송달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변호를 맡은 인물이다.
이 변호사는 북한은 김일성 유일·주체사상에 입각한 반(反)국가단체로,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고발장에서 “김 부부장 등의 폭파 범죄는 자신들이 스스로 범행을 자복·선전한 명백한 사실”이라며 “대한민국 헌법과 형법, 국가보안법이 범죄 처단에 유효한 규범으로 기능한다는 법리와 판례가 확립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담화 및 언론보도, 통일부 발표 등 자료에 의해서 증거는 이미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테러 범죄를 척결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우기 위해 대한민국에 의한 수사·소추·재판 관할권이 실현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고발을 통해서 국제사회의 김 부부장에 대한 제재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피해액은 건축비에 해당되는 180억원으로 고발장에 명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우 명확한 공모 관계에 드러나지 않아 이번 고발 대상에서는 제외됐다는 게 이 변호사 측 설명이다.
태영호 “책임 물어야”…처벌 가능성 미지수
앞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은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서 “국내법으로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전 지역은 대한민국 영토이며, 당연히 김정은 남매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고발을 촉구한 바 있다.
태 의원은 “언젠가 김씨 일가의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명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김 부부장에 대한 고발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실제 수사 및 처벌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이 많다. 수사기관의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가 설령 기소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한국 법원에 출석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발이 이뤄지면 피고발인 조사 등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실제 처벌이 이뤄질 가능성은 아예 없다. 기소중지 정도의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고발은 국민 누구나 할 수 있고, 헌법상 우리 법원의 재판권에 속하는 사항”이라며 “우리 법원 관할이 돼야 마땅하다. 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혐의가 입증되면 기소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탈북 국군포로’ 김정은 배상 책임 인정
앞서 법원은 지난 7일 6·25전쟁 때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노역했던 전직 군인들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북한이 항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만큼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대해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로 알려졌다.
원고 측 대리인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기간과 상속지분율에 따라 책정됐다. 이에 따라 법원은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으로 원고들에게 각 21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손해배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한국 정부가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가능성이 희박한 점, 국내에 북한 자산이 없는 점 등이 걸림돌로 거론된다.
통일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 법원 판결에 대해 “(해당) 판결에만 유효한 것이므로 일반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실효성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