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앓은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폭설이 내리던 지난 1월 어느 날 美 동북부 뉴햄프셔州.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노리는 앨 고어(51) 부통령의 부인 티퍼 고어(50)는 내년도 첫 예비선거를 겨냥해 온종일 홀로 남편을 위한 선거유세를 계속했다. 그 사이 고어는 워싱턴에서 아내가 잘하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온종일을 보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티퍼는 선거유세 참여를 꺼렸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것도 가급적이면 피했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고어도 티퍼가 가는 곳마다 그녀의 수행원들에게 전화해 그녀의 기분을 체크했다.
고어 부부의 친구들도 인정하듯 고어는 그녀 없이는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지난 세월 동안 티퍼는 남편의 정치 활동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티퍼가 고어의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일지 모른다. 쾌활하고 사교적인 티퍼는 굳은 표정의 남편이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행동하게 한다. 매번 쉬운 일은 아니다.

결혼한지 29년이 지났지만 이들 부부는 아직도 궁합이 맞지 않는 커플 같다. 고어는 가벼운 모임에서조차 어색해 하고 딱딱해지며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만 느긋해진다. 이와 반대로 티퍼는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공식 행사 때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연단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청중석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일쑤다.

지난 4월엔 고어가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모금행사에서 참석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동안 티퍼는 왕년의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의 멤버들과 함께 곡에 맞춰 드럼을 치고 있었다(티퍼는 한때 여성밴드 '와일드 캐츠'의 드러머였다).

그같은 외향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티퍼는 오랫동안 남편의 공직생활로 인한 사생활의 희생과 씨름해 왔다. 선거유세가 시작되면서 그녀는 또다시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드러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녀는 얼마 전 아들이 89년 교통사고로 거의 죽을 뻔한 뒤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지금은 회복됐다고 밝혔다. 폭로 시점을 고려할 때 티퍼가 남편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따르는 검증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일 수도 있다는 것이 친구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티퍼는 자신의 우울증 병력 고백이 정신병에 수반되는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미 오랫동안 정신병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온 그녀는 자신의 정신병력 공개 문제를 두고 고심해 오다 최근 콜로라도州 컬럼바인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10대 문제아들이 도움받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데 충격받았으며 특히 범인 에릭 해리스(18)의 우울증 치료제 복용이 사건발생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보도에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티퍼가 정신병력을 지금 공개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녀는 6월 심리학자·정치인·시민 등이 모인 가운데 최초로 백악관에서 열릴 정신보건에 관한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그 회의를 통해 그 문제에 관한 해묵은 신화와 수치심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이 그녀의 희망이다. 클린턴도 그 회의에서 연방 공무원들이 가입한 의료보험 회사들에 대해 정신병에 대해서도 일반 질병과 똑같은 혜택을 줄 것을 요구하는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녀의 측근들은 행여 언론이 그녀에게서 우울증이 재발했다는 징조를 찾기 위해 그녀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주시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티퍼는 이따금씩 저기압인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이 '티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측근은 말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티퍼의 오랜 관심은 북부 버지니아州에서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명이 메리 엘리자베스 애치슨('티퍼'란 별명은 조부모가 지어줬다)인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여러 차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몇 차례 입원했고 그것은 가족에게도 암울한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 잭 애치슨은 부인의 상태를 견디지 못해 티퍼가 네 살 때 이혼했다. 그 후 티퍼는 어머니와 함께 외조부모 집에서 살았다. 어린 티퍼에게 그것은 좌절의 시기였다. 정신병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하던 때였기 때문에 티퍼의 어머니는 누군가가 자신의 병을 알아보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 어머니의 우울증에 따르는 사회적 낙인과의 오랜 싸움은 딸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외향적 성격에 장난기 많은 그녀는 어린 시절 성공회 학교에 다녔고 고어가 다니던 워싱턴의 명문 사립고교 세인트 앨번스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교 모임에도 잘 어울렸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65년 봄 고어의 고교 졸업식 댄스 파티에서였다. 그들은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고어가 하버드大로 진학하자 그를 따라 보스턴으로 가 갈랜드 주니어 칼리지에 먼저 등록한 뒤 나중 보스턴大로 편입했다. 그들은 70년 결혼한 뒤 고어의 고향 테네시州 카테이지로 이사해 76년까지 내슈빌 테네시언紙에서 함께 일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연방 상원의원이던 고어는 더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해 그는 갑자기 하원의원 출마를 발표했다. 그러나 티퍼는 남편의 변신을 반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진 기자로서의 자신의 직업이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데다 심리학 석사학위를 위해 공부해 오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원의원 후보의 부인이라는 새 역할에 불안감을 느꼈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세 살난 딸 카레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줄 수 없는 현실에 화가 치밀었다.

결국 고어가 당선됐고 그들은 짐을 꾸려 워싱턴으로 이사했다. 티퍼는 일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도시 워싱턴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티퍼는 의회에서 열리는 강연에 아이들을 데려가곤 했다. 또 그녀는 고어에게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하원의원 고어(나중엔 상원의원이 됐다)는 주말만 되면 지역구인 테네시州의 유권자들을 만나러 내려갔고 티퍼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러야 했다.

티퍼는 아직도 가족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그녀와 고어는 저녁에 오랫동안 산책에 나서며 비서들은 두 사람이 몇 주마다 평일 하루를 지정해 함께 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미 고어의 세 딸은 출가했지만 16세 난 앨버트 3세는 아직 집에 있어 티퍼는 집 떠나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어 부부의 맏딸 카레나는 6월 출산 예정이고 티퍼는 할머니 노릇을 하기 위해 몇 주간 스케줄을 비워놓을 계획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티퍼는 정책안 마련에 부심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녀는 아직 영부인이 될 경우 하게 될 일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한 바 없다"고 말하지만 티퍼가 정부 내 임시대책반이나 위원회를 이끄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친구들은 말한다. 대신 정신보건과 부랑자 문제에 계속 신경을 쏟아부을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남편의 선거전에 대비하면서 또다시 낯익은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글 : Debra Rosenberg 기자 뉴스위크 제 3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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