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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름답고 가련한 팜 파탈, 오페라 '마농'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7)

여기 우연히 만나자마자 사랑하게 된 연인이 있습니다. 남녀의 나이는 겨우 열 일곱, 열 다섯이지요. 두 사람은 운명처럼 첫눈에, 열병처럼 서로에게 빠진답니다. 다만, 남자를 인도하는 감정은 사랑이었음에 반해 여자를 이끌었던 것은  쾌락이었답니다.

쥘 마스네가 1884년 초연한 〈마농〉은, 원작인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의 줄거리를 따라가되 마농의 ‘팜 파탈’부분에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사랑 앞에서 오로지 직진뿐인 데 그뤼를 파멸시키며 쾌락을 추구한 마농이지만, 그녀를 경멸만 하기에는 마음 한쪽을 휑하게 만드는 것이 있답니다. 그녀 역시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을 품었기 때문이지요.

오페라 마농 포스터. [사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마농 포스터. [사진 국립오페라단]

25~28일 무관중 영상 공연…네이버로 생중계
국립오페라단이 6.25~6.28 4일간 무관중으로 영상 공연하는 오페라 〈마농〉을 미리 만나봅니다.

막이 오르면 배경은 아미앵의 마차역 여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녀원으로 가는 마농을 사촌오빠인 레스코가 동행 중입니다. 레스코는 짐을 정리하고 마농이 혼자 있는데, 노 귀족 모르퐁텐이 이 아름다운 시골처녀에게 추파를 던집니다. 물론 마농은 늙은이의 행동을 어이없어 하지요.

유학중인 데 그뤼도 마농을 보곤 첫눈에 반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겁니다. 마농은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마음이 열리고, 데 그뤼는 정신 줄을 놓은 듯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요. 우리도 한 때 그랬듯이, 젊은 청춘들은 늘 이렇게 번개 같은 사랑을 하잖아요! 어여쁜 마농이 반강제로 수녀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들은 그는 분개하며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내심 수녀원에 가기 싫었던 마농은 데 그뤼에게 같이 파리로 도망가자고 합니다. 그는 그녀와 같이 달콤한 생활을 상상하며 “우리 둘 영원히 사랑을…”이라고 노래합니다. 그와 달리 마농은 오로지 화려한 도시로 가는 것만이 목적인 듯 “파리, 파리에서..”만을 되뇔 뿐입니다. 마치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암시하듯 말이죠.

청춘들은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진 Flickr]

청춘들은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진 Flickr]

장면이 바뀌어 파리의 낡은 아파트인데,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나누며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이때 레스코와 귀족이 찾아옵니다. 레스코는 데 그뤼의 아버지가 찾고 있다고 전하고, 귀족은 마농에게 학생과의 옹색한 살림대신 자신과 풍요로운 생활을 해보라며 그녀의 허영심을 한껏 자극합니다.

그들이 돌아가자 마농은 “나도 여왕처럼 살 수 있어”라며 다시 본능이 꿈틀댑니다. 결국 뜨겁고 관능적인 사랑을 함께 했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그와의 생활을 정리할 작정인 것이지요. 데 그뤼가 그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에게 납치되자, 상황을 눈치챈 마농이 외칩니다. “가엾은 그뤼!”

모르퐁텐의 후원으로 사교계의 여왕이 된 마농이 멋진 옷과 장식으로 치장하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미모를 찬양합니다. 그녀는 진짜 여왕이 된 듯 만족해하지요. 우연히 만난 데 그뤼 백작에게 마농이 아들 데 그뤼의 소식을 묻자, 그는 아들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곧 신부가 될 것이라며 “이제 옛 여자는 잊었다”라고 합니다. 그 말에 마농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그의 신학교로 달려갑니다.

마농이 예배당에서 자신의 사랑이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네요. 그녀를 발견하고 놀란 데 그뤼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당장 돌아가라고 소리칩니다. 마농은 데 그뤼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애원하지요. 그는 정숙치 못한 그녀를 힐난하며, 모래에 쓴 사랑처럼 추억은 모두 사라졌다고 외면합니다.

허나 그녀는 2중창 ‘당신의 손을 잡은 이 손’을 부르면서 절절하게 호소합니다. 과거 자신의 숨결, 손길 그리고 애무를 기억하라며 당신을 사랑하던 마농이라며 유혹하는데, 차마 떨치지 못할 만큼 그녀는 치명적이랍니다. 결국 신성모독을 말라며 거부하던 그는 “오! 마농, 사랑하오”를 외치지요.

장면이 바뀌면 호텔의 도박장입니다. 마농은 데 그뤼가 상속받은 돈을 모두 써버리자 도박이라도 하자며 이곳으로 데려왔답니다. 그는 이런 곳이 불편하지만 마농을 만족시키기 위해 뭐든지 할 생각이구요.

황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이 초짜 데 그뤼의 연속되는 도박운! 큰 돈을 잃자 모르퐁텐이 속임수를 썼다며 판을 뒤엎고 자리를 뜹니다. 결국 모르퐁텐이 경찰을 데려오고, 마침 나타난 백작도 타락한 아들의 처벌을 요청하여 두 사람은 체포되지요.

죽어가며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마농. [사진 Flickr]

죽어가며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마농. [사진 Flickr]

이후 귀족 아버지의 뒷배로 석방된 데 그뤼는 마농을 구하러 항구 르 아브르에 왔습니다. 신대륙 유배형에 처해진 그녀는 곧 추방되기 직전이랍니다. 그는 병들고 창백해진 그녀를 안으며 같이 도망가자고 합니다. 마농은 그의 품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절감하지요.

그들은 피날레로 이별의 2중창 ‘내 영혼은 오직 사랑뿐’을 부르지요. 사랑했지만 데 그뤼의 귀중함을 몰랐던 그녀. 어리석게도 그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던 자신을 저주하며, 마농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내게 모든 것을 준 남자. 나의 진정한 사랑!” 그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그녀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지요. 허나, 이미 병약해진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열적인 사랑과 슬프고도 아련한 사랑을 그린 오페라 〈마농〉. 주역인 마농은 5막인 이 오페라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1막에서는 오드리 햅번의 순진함, 2막에서는 사랑에 빠진 엘리자베스 테일러, 3, 4막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치명적인 섹시함이 드러나야 하지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며 죽어가는 가련한 모습도 연기해야 합니다. 카멜레온 같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노래에서는 서정성과 쾌락을 들려줘야 하지요.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오페라를 즐기는 또 하나의 매력이랍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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