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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약속 지켰다"…군함도 왜곡, 적반하장으로 나온 일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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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일본 정부 산업유산정보센터가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에선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왜곡된 내용을 전시한 문제로 한·일 양국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오카다 관방부장관 韓주장 정면반박 #"유네스코 결의와 권고 성실히 이행" #"유산 관리 보전은 등록국이 하는 것" #"1910년이후 내용 전시는 한국 배려" #'조선인 차별 없었다'질문에 입닫고 #'피해자 추모'설립 취지 언급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외교부가 15일 오후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직후 일본 정부는 오가타 나오키(岡田直樹)관방 부장관의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측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이날 오카다 부장관과 일본 정부의 주장은 한마디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 그리고 당시 약속한 조치를 일본 정부가 성실하게 이행해왔다"는 것이다.

오카다 부장관은 "세계유산에 등록된 자산의 보전·관리는 등록한 국가의 판단으로 하는 것"이라며 "센터의 전시 내용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를 포함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적절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래 산업혁명 유산센터의 전시대상은 1910년까지이지만, 그 이후의 전쟁(태평양전쟁)중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도 전시하는 등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등록된 유산에 관한 전시 내용은 원래 일본이 그냥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것인데,한국의 입장을 배려한 결과 전시 대상도 아닌 1910년 이후 내려진 징용령 관련 자료도 전시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러면서 "2015년 세계유산 등록시 국제사회에 약속한 스테이트먼트(발언)에 대해서도 판넬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했고, "2019년 3월31일 약속대로 산업정보센터를 개소했다"며 '약속 지키는 일본'을 부각했다.

도미타 대사의 초치에 대해서도 오카다 부장관은 "한국측 주장에 대해 도미타 대사는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전시내용도 적절하다’는 취지로 강하게 항의했다"고 소개했다. 한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태도다.

도미타 고지(富田浩司) 주한 일본 대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도미타 고지(富田浩司) 주한 일본 대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전시 내용을 추가하거나 바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의 결의와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이날 오카다 부장관의 주장은 여러 대목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카다 부장관은 "세계유산에 등록된 유산의 보전·관리는 일본의 판단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시마와 징용문제에 대한 전시는 단순한 유산 보전·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7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사토 구니(佐藤地)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 많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했다. 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보센터에 어떤 내용을 전시하느냐는 단순히 유산의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세계유산 등재의 전제조건이었다.

2015년 한국 정부는 ‘징용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결사 반대했다.
결국 강제 징용 인정과 피해자 추모 정보센터 건립 등을 조건으로 타협이 이뤄진 셈이지만, 오카다 부장관의 발언은 이런 경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15일 오후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의 결의와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오카다 나오키 관방 부장관. [사진=일본 참의원 홈페이지]

15일 오후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의 결의와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오카다 나오키 관방 부장관. [사진=일본 참의원 홈페이지]

또 브리핑에서 일본 기자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내용에 대해 한국이 반발하고 있다'고 물었지만 오카다 부장관은 전혀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시마 주민들의 증언'형식을 통해 강제 징용을 교묘하게 합리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가 과연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피해자 추모'라는 센터 설립 취지에 맞는 것인지, 그 본질적 질문에 대해 입을 다문 것이다.

"일본이 징용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전시에 포함시켰고, 정보센터를 만들었으니 그 자체만으로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지켜졌다는 게 일본측 주장인 셈이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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