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아 껴안기] 자립 키우는 일터

중앙일보

입력

2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은혜교회 건물5층.

TV부품 조립라인에서 움직이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구조조정의 찬바람에 다른 공장들은 생기를 잃고 있지만 이곳은 활력이 넘친다.

60여평의 TV 부품 조립작업장인 ´밀알 장애인사업장´ . 정신지체.자폐.청각장애 등 장애인 60여명의 삶의 터전이자 희망이다.

이곳은 1998년 9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실직한 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위해 삼화전자 사장 李근삼씨와 밀알복지재단이 손잡고 세웠다.

청각장애인 10여명으로 출발한 이 작업장엔 현재 청각장애인 31명.정신지체인 18명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더불어 일하고 있다.

TV와 비디오에 들어가는 콘덴서형 부품을 만드는 이 작업장은 장애인들의 특성에 따라 작업 라인이 나뉘어져 있다.

정신지체인들은 주로 손쉬운 1차 부품조립 라인에서 일하며 청각.지체 장애인들은 구리선 감기, 납땜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에 배치됐다.

부품 끼우기에 여념이 없는 한 정신지체인의 손길은 여느 작업장 일반인의 솜씨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작업장 관리자 황선삼(黃善三) 씨는 "처음에는 힘으로 끼우려고 애쓰다 부품만 파손시키곤 했는데 지금은 한개 조립하는데 10초도 안걸릴 뿐 아니라 조립 솜씨도 수준급" 이라고 전했다.

순조롭게 다음 라인으로 조립품을 넘기는 이들의 손길이 이만큼 능숙해지기까지에는 청각장애인들의 역할이 컸다.

조립라인마다 1~2명의 청각장애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부품 맞추는 요령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지체인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한 공간에서 북적대며 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4월 일부 청각장애인들은 정신지체인 4명이 첫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노골적으로 불쾌해 했다고 한다.

귀가 안들려 말로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빼고는 자신들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데 어떻게 정신지체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느냐는 것.

이들은 화장실조차 함께 쓰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지만 같은 공간에서 몇개월을 부딪치자 서로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정신지체인도 이 사회에서 장애로 괄세받는 자신들과 다름없는 동반자로 보게 된 것. 청각.지체장애인들이 돕기 시작하자 정신지체인들의 작업 속도와 내용도 나날이 향상됐다.

黃씨는 "처음엔 이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작업이 손에 익으면서는 불량품도 줄어들고 일처리가 꼼꼼해 납품업체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고 전했다.

월급은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지원금을 포함해 월 50만원선. 정신지체인 趙모(28) 씨는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받아 주는 일자리가 없어 크게 낙심했지만 이제는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노력한다" 고 말했다.

현재 전국 장애인 직업재활 작업장 1백69곳에서 약 4천7백여명의 정신지체아 등 장애인들이 일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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