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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뮤다 삼각지대'에도 있다…제주에 밀려온 누런색 해조류

중앙일보

입력

4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해안에서 해병대 9여단 병사들이 괭생이모자반을 치우고 있다. 5월부터 제주 북쪽 해안 전역으로 밀려든 괭생이모자반 탓에 제주도 전체가 나서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해안에서 해병대 9여단 병사들이 괭생이모자반을 치우고 있다. 5월부터 제주 북쪽 해안 전역으로 밀려든 괭생이모자반 탓에 제주도 전체가 나서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앞바다가 누런색 덩어리로 가득 찼다. 해조류의 일종인 괭생이모자반이 지난 5월부터 한 달째 해안가로 밀려들고 있다. 해변의 경관과 안전을 해치는 데다가, 6월 들어 30도가 넘는 날씨가 지속되면서 악취까지 풍기고 있다.

제주 전역에서 올해 수거된 괭생이모자반은 총 2300톤에 이른다. 예년 이맘때 수거량의 서너배 수준이다. 매일 20~40톤의 괭생이모자반이 쌓이고 있다.

지난 2일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측은 “서해 외해와 동중국해에 대규모 괭생이모자반 덩어리가 관측됐고, 이달 말까지 계속해서 제주도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골칫거리가 된 괭생이모자반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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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다 위 노란 덩어리의 정체는?

괭생이모자반을 근접 촬영한 사진. 오른쪽 사진에서 길쭉한 유선형의 생김새가 공기를 포함한 '기낭'이다. 괭생이모자반 줄기 곳곳에 붙어있어, 모자반 전체를 물 위로 띄우는 튜브 역할을 한다. [2016 한국수산과학회지 '한국 신안과 제주 연안에서 모자반( Sargassum ) 유조의 대량발생'(황은경 외)]

괭생이모자반을 근접 촬영한 사진. 오른쪽 사진에서 길쭉한 유선형의 생김새가 공기를 포함한 '기낭'이다. 괭생이모자반 줄기 곳곳에 붙어있어, 모자반 전체를 물 위로 띄우는 튜브 역할을 한다. [2016 한국수산과학회지 '한국 신안과 제주 연안에서 모자반( Sargassum ) 유조의 대량발생'(황은경 외)]

괭생이모자반은 제주도에선 ‘몸’이라고 불리는 모자반의 일종이다. 15도 이하의 찬 물에서 잘 자라는 연한 황갈색의 해조류다. 동아시아, 특히 산둥반도 등 남중국 연안에 서식하는데, 조류에 떠밀려 동중국해나 서해 해상에서 엉겨붙은 덩어리째 발견된다.

미국 동남쪽, 쿠바의 동쪽에 위치한 sargasso 해역. 구글맵 캡쳐

미국 동남쪽, 쿠바의 동쪽에 위치한 sargasso 해역. 구글맵 캡쳐

괭생이모자반의 학명(Sargassum horneri)은 북대서양의 미국 바하마 제도 동쪽 앞바다인 사르가소 해(Sargasso Sea)에서 유래했다. 사르가소 해는 북대서양 해양 순환의 중심에 있어 해류의 흐름이 거의 없고 모자반 계열의 등 대형 해조류가 많이 떠 있다. 소위 '버뮤다 삼각지대'는 사르가소 해의 서쪽 해역에 위치해 있다.

괭생이모자반은 지금도 이 해역에 많이 자란다. 사르가소 해는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항해사들 사이엔 '죽음의 바다''대서양의 무덤' 등으로 불렸던 곳이다. 바람과 해류에 의존하는 범선은 해류도 바람도 거의 없는 이곳에서 자칫 발이 묶일 수 있었다.

뱃사람들 사이엔 사르가소 해에 워낙 해조류가 많아 '해초에 배가 묶여 좌초당한다'는 속설이 퍼졌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제1회 항해(1492년)에 당시 바람이 없고 해조가 배에 달라붙어 마음대로 나아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

② 살았나? 죽었나?

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중문 앞바다에 괭생이모자반이 긴 띠를 이뤄 떠다니고 있다. 이날 관측된 괭생이모자반 띠의 길이는 5km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중문 앞바다에 괭생이모자반이 긴 띠를 이뤄 떠다니고 있다. 이날 관측된 괭생이모자반 띠의 길이는 5km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요즘 제주 해역에서 관찰되는 노란 괭생이모자반 덩어리는 물 위에 뜬 채 살아있는 상태다. 괭생이모자반은 대개 수심 3~5m 밑의 바위에 붙어 자란다. 그러다 1~2월쯤 해류나 바람의 영향을 받아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다. 바위에서 떨어진 뒤에도 물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살 수 있다. 작은 어류나 다양한 수상생물이 숨어 사는 공간도 된다.

어린 모자반의 끝에는 공기주머니(기낭)가 있어 수면 위에 뜬 채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노쇠한 모자반은 기낭이 사라지면서 가라앉는다. 2013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멕시코 걸프만 북서부에서 봄철에 발생한 모자반은 여름에 사르가소 해로 이동한 뒤 겨울에 심해로 가라앉는다.

바위에 있던 괭생이모자반이 떨어져 나온 뒤에는 길쭉한 형태 때문에 많은 수의 개체가 서로 엉킨다. 여느 해조류와 달리 기낭이 있어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무리가 점점 커지면서 인공위성으로 관측될 만큼 큰 덩어리를 만들기도 한다.

2017년 관측된 괭생이모자반 무리는 길이가 2㎞를 넘겼다. 올해는 최대 직경 50m의 괭생이모자반 덩어리가 제주 남쪽 바다에서 관찰됐다.

③어디서, 어떻게 왔나

중국 남동쪽 연안의 괭생이모자반 유전자형과 국내 에서 발견되는 괭생이모자반의 유전자형은 같은 형질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나왔다. 2019 Nature Scientific Reports 'the origin and population genetic structure of the ‘golden tide’ seaweeds, Sargassum horneri, in Korean waters' (변서연, 오현주 외)

중국 남동쪽 연안의 괭생이모자반 유전자형과 국내 에서 발견되는 괭생이모자반의 유전자형은 같은 형질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나왔다. 2019 Nature Scientific Reports 'the origin and population genetic structure of the ‘golden tide’ seaweeds, Sargassum horneri, in Korean waters' (변서연, 오현주 외)

2000년대 이후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중국 연안에 서식하는 괭생이모자반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뒤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갔다가 서해에서 다시 바람을 타고 제주도 북부와 남해안으로 유입된다고 알려져 있다. 구로시오 해류는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남중국해를 따라 올라오는 난류다.

지난해 5월 상지대 연구진과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 등이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견되는 괭생이모자반의 유전형질을 분석한 결과 중국 저장 성 저우산 시에서만 발견되는 괭생이모자반과 같은 계통이다.

④ 왜 올해 유독 많나

지난해 4월 캐리비안 해역에 나타난 괭생이모자반 덩어리. 괭생이모자반은 미국 남동쪽의 해역에서도 대규모로 발견되고,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4월 캐리비안 해역에 나타난 괭생이모자반 덩어리. 괭생이모자반은 미국 남동쪽의 해역에서도 대규모로 발견되고,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다. AFP=연합뉴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4~5월의 기상 조건 때문이란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 북쪽 연안으로 밀려간 괭생이모자반 무리가 예년보다 강했던 북풍을 타고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더 많이 밀려왔을 것이란 설명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군락이 이동하기 때문에, 괭생이모자반의 이동은 바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며 “올해 5월부터 북쪽에서 바람이 많이 불면서 괭생이모자반이 지속해서 밀려오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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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의 ‘해상 조림사업’을 위해 대량으로 심은 괭생이모자반이 밀려오는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해조류의 숲에서 떠밀려 왔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중국 연안은  괭생이모자반이 원래 많은 곳이고, 중국의 해상 조림사업도 몇 년 전 시범사업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⑤ 뭐가 문제지?

19일 오전 제주 제주시 도두동 해안가에서 바다지킴이들이 괭생이모자반을 제거하고 있다.〈br〉〈br〉중국 연안에서 제주로 떠밀려오는 괭생이모자반은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선박 스크류에 감겨 조업에 지장을 초래하고, 양식장 그물 등에 달라붙어 시설을 파손하기도 한다. 뉴스1

19일 오전 제주 제주시 도두동 해안가에서 바다지킴이들이 괭생이모자반을 제거하고 있다.〈br〉〈br〉중국 연안에서 제주로 떠밀려오는 괭생이모자반은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선박 스크류에 감겨 조업에 지장을 초래하고, 양식장 그물 등에 달라붙어 시설을 파손하기도 한다. 뉴스1

해안가로 유입되는 괭생이모자반 무리는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 몇 년간 제주 해역에서도 괭생이모자반이 선박의 스크루에 빨려 들어가 운항에 지장을 주거나, 수중에서 작업하는 해녀의 몸에 감겨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양식장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2015년 괭생이모자반 2만톤이 유입돼 이를 치우는 데에만 23억원이 들었고, 양식장 피해액이 397억원에 이르렀다.

국립수산과학원이 공개한 괭생이모자반의 이동 경로. 괭생이모자반에 부착한 부이의 위치를 위성으로 추적했다. [사진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국립수산과학원이 공개한 괭생이모자반의 이동 경로. 괭생이모자반에 부착한 부이의 위치를 위성으로 추적했다. [사진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국립수산과학원은 2018년부터 괭생이모자반 유입예측사업을 시작했다. 인공위성 등을 활용해 괭생이모자반의 유입 등을 예상할 수 있게 됐지만, 밀려들어 오는 괭생이모자반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현재는 일반쓰레기로 처리되는데, 유입량이 워낙 많아 미처 치우지 못한 채 해변에서 부패해 악취를 풍기는 경우가 잦다. 염분이 많아 곧바로 논밭의 거름으로 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해양수산부는 2022년까지 괭생이모자반의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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