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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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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중후장대 산업. 조선·철강·중공업 담당 기자들이 이들 산업을 통칭해 일컫는 말이다. 육중한 장비와 넓은 대지가 필요한 산업이란 뜻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전통적인 제조업이자, 기업을 고객으로 둔 B2B 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중후장대 산업 담당 기자를 맡았던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초호황의 끝물이었다. 조선사는 쏟아지는 주문에 퇴직자들을 다시 불러왔고, 각 그룹이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는 데 열을 올렸다. 기업의 걱정거리라면 수요가 몰려서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다는 것 정도. 그때는 그런 호시절이 계속 갈 것만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중후장대 산업은 기사거리가 많지 않은 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자료를 쏟아내는 소비재 기업과 달리 해외 수주 같은 굵직한 자료만 간간히 나왔다. 그러던 중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라는 초대형 거래가 발표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미국 잉거솔랜드의 밥캣·어태치먼트·유틸리티 세 사업부문을 49억 달러(약 5조원)에 사들였다. 당시로는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M&A였다.

이듬해 봄 만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밥캣 본사가 있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겨울 날씨가 얼마나 매서운지, 한번 가려면 뉴욕에서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를 한참 이야기했다. 밥캣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 인터뷰가 세 시간을 넘겼다. 그는 마치 만루홈런을 치고 홈베이스를 밟은 타자를 연상케 했다. M&A 승부사라는 수식어가 그에게 붙었다.

그리고 12년 뒤. 박용만 회장과 인터뷰를 했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는 이제 곧 그 이름이 바뀌게 생겼다. 두산그룹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그룹의 상징인 두산타워를 이미 매물로 내놨다. 두산그룹은 채권단과 합의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계획한 자산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핵심 자산인 두산밥캣마저 팔아야 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두산의 밥캣 인수는 지금까지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해외기업 M&A 기록으로 남아있다(1위는 2016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80억 달러). 두산의 역전 만루홈런 한방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