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해 3차례 추경, 나랏빚 올해에만 100조 늘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초유의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역대급’ 나랏돈 풀기다. 정부는 3일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35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편성한 2009년 추경(28조4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 해에 세 차례 추경을 편성한 것도 1972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이다. 1·2차까지 합하면 올 한 해 추경은 총 59조2000억원에 이른다.

국무회의서 35조 추경안 의결 #23조8000억은 국채 발행해 메꿔 #경기 보강에 11조3000억 투입 #고용·사회안전망 확충 9조4000억 #“부진한 수출 회복할 사업 안보여 #제조업 지원, 규제 완화 병행해야”

‘경제위기 조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라는 문패를 단 이번 추경예산 중 11조3000억원은 경기 보강을 위해 쓴다. 8대 소비쿠폰 제공, 유턴기업 지원, 노후 터널·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안전 보강 사업 등이 주를 이룬다. 인공지능(AI) 및 소프트웨어 인재 10만 명 양성, 공공시설 와이파이 구축과 같은 한국판 뉴딜 사업과 ‘K-방역’ 산업 육성도 이번 추경안에 포함됐다. 9조4000억원은 직원을 내보내지 않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고용·사회 안전망 확충에 투입된다. 또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위한 긴급자금 지원과 항공업 등에 대한 유동성 지원 펀드 조성 등에 5조원을 투입한다.

국가채무 추이(중앙·지방정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가채무 추이(중앙·지방정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관련기사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수출·생산 급감으로 이어지며 제조업을 흔들고 있는데, 3차 추경은 이런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해 배정된 금액은 3617억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출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위한 무역보험기금 출연(3271억원)이다. 나머지 사업도 200억원 규모의 유턴기업 전용보조금 등이다. 그나마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자금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번 추경에 한국판 뉴딜 사업, K-방역 등을 포함했지만 당장 효과가 나는 사업은 아니다”며 “부진한 수출과 생산을 회복시킬 만한 사업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제조업 부진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제조업에 대한 단기 지원책과 함께 제조업 회복을 저해하는 규제 완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예산 2조, 국방예산서 3000억 삭감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추경 재원 가운데 10조1000억원은 원래 잡혀 있던 예산에서 빼는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다. 지출 삭감액으론 역대 최대 기록이다. 고속도로·철도·공항 건설과 같은 사업을 뒤로 미루고, 중앙부처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를 줄이는 식이다. 교육 예산이 가장 많이 깎였다. 2차 추경 때(72조8000억원)와 견줘 1조9000억원(2.6%) 감액됐다. 코로나19로 내국세 수입이 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에 연동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서다. 다음으로 많이 깎인 건 국방 예산이다. 2차 추경보다 3000억원(0.6%) 깎였다.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할 함대공 미사일 예산 706억원, 차기 고속정을 개발하는 ‘검독수리 사업’ 예산 283억원 등이 날아갔다. 이에 따라 한국 최초의 군용 정찰위성 개발, 함대공 미사일 구매 등 각종 방위력 개선 사업에 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발등의 불을 끄느라 미래 안보 투자를 줄인 셈이다.

지출 구조조정 이외에 1조4000억원은 근로복지기금 등 8개 기금의 여유 재원으로 충당한다. 나머지 23조8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메꾼다. 나랏빚을 늘린다는 얘기다. 1~3차 추경을 위해 발행해야 할 적자 국채는 총 37조5000억원에 달한다.

1·2차 추경에 3차 추경까지 더해지며 올 한 해에만 국가채무가 99조4000억원 순증(純增)한다. 이에 중앙·지방 정부의 채무를 합한 ‘국가채무’는 올해 840조2000억원까지 뛸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지난해 37.1%에서 올해 43.7%로 늘어난다고 정부는 추산했다. 증가율이나 규모·속도 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2000년 이후 추경 규모. 그래픽=신재민 기자

2000년 이후 추경 규모. 그래픽=신재민 기자

재정건전성 지표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4대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는 올해 112조2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상 최대 적자였던 지난해(54조4000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전년 대비 증가 폭도 사상 최대다. 외환위기 때인 98년(24조9000억원),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던 2009년(43조2000억원)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간 경제 규모가 커진 점을 고려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예측한 올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5.8%다. 최초로 5%를 넘길 전망이다.

홍남기 “국가채무 증가 속도 상당히 경계”

관리재정수지 증가 속도 사상 최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관리재정수지 증가 속도 사상 최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청와대와 정부, 여당 모두 빚을 내서라도 재정 지출을 늘려 경제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은 만능이 아니고, 효과도 과신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확장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국의 재정 승수 효과는 0.6 내외로 매우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100억원을 지출하면 GDP를 60억원 끌어올리는 효과가 난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결국 재정이 민간의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기업이 버거워하는 시장 규제 등 구조적 결함은 그대로 두고 모든 경제 문제를 재정으로만 해결하려 하다 보니 비효율적 집행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 역시 추경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재정 적자의 규모·속도는 우려하는 분위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 재정이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러나 지난해, 올해, 내년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에 대해서는 재정 당국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하남현·허정원 기자, 이근평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