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학년도 수능] 수험생 식단

중앙일보

입력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5일) D-6.서울 플라자호텔 2층 뷔페식당 주방에 전공이 다른 요리사 일곱명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방 일을 하다가 잠시 손이 비는 시간인데 각자 컴퓨터를 켜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떤 이는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따로 만들어 시식을 하기도 한다. 요리를 전공하려는 수험생도 아닌 이들이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볼 때보다 진지하다.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http://www.plazacooking.com)를 만들어 요리에 대한 주부들의 궁금증을 척척 풀어주기로 소문난 플라자호텔 '요리사 7인방' . 이달 초부터 수험생을 둔 주부들의 문의가 부쩍 늘면서 이들이 수험생의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수험생 엄마' 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학교 급식이 보편화돼 평소에 도시락을 싸지 않던 주부들이 수능 당일에 아이에게 먹일 점심도시락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 이 사이트의 문지기격인 송근배 조리사(40) 의 말이다.

"얼마전에 한 주부가 아이를 위해 내놓을 메뉴가 동이 났다며 앞으로 뭘 만들어 먹여야 할지 고민이란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 컴퓨터 앞에 있던 윤영기(30) 조리사가 전한다.

일곱명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자신이 개발한 음식을 내놓고 품평회를 하든지 큰 이슈가 있을 때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인데 이날은 수험생을 위한 시험 당일 점심도시락과 앞으로 6일간의 식단을 짜려고 모인 것이란다.

이들은 한식.일식.중식.양식.베이커리 등 각 레스토랑의 주방을 맡고 있는 중견급 요리사들. 각 분야에서 7년차부터 25년차까지 탄탄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미역.계란처럼 미끄러지고 깨진다는 불길한 징조를 가진 재료들은 빼기로 합시다. 괜히 아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요. " 맏형격인 최송정(46) 중식 주방장의 지침이다.

"소화가 잘되는 재료에 양은 최소화해야 해요. 자칫 식사한 뒤에 속이 더부룩하면 오후 시험을 망칠 수 있지요. 또 양이 많으면 머리 회전이 둔해집니다." 막내 최수열(27) 제과사가 거든다.

▶갑작스럽게 호텔식 고급요리를 만들어내면 아이들이 폭식할 우려가 있다▶양식.중식의 주재료는 속에 부담이 크다▶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등 꼼꼼하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2시간 동안 토론 끝에 만들어진 식단 (그래픽 참조) 은 한식이 주축이 된 건강식. 식단의 기본이 되는 밥은 굳이 정하진 않았지만 흰 쌀밥보다 현미밥.콩밥. 보리밥 등이 포만감이 있으면서도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도시락은 머리를 맑게하는 조개된장국을 내세우며 입맛을 살리기보다는 간단하게 빈 속을 채울 정도로 단순하게 꾸몄다.

또 도시락이 부담가는 여학생들을 위해 따로 야채와 참치 등이 들어간 모둠 샌드위치를 만들어 제시했다.

"막바지에 힘내라고 고기요리 등 보양식을 내면 아이들이 과식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뇌의 활동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보양식은 시험을 치룬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다." 일식전문 김병기(30) 조리사의 조언이다.

시험보는 아이들이 시험에 너무 부담을 갖게 되면 망치기 십상. 이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엄마들 역시 먹거리에 너무 신경을 쓰면 오히려 수험생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송조리사는 "평소에 아이가 즐겨 먹던 음식이 수험생에겐 최고의 음식" 이라며 식단에 이들 음식도 첨가해 볼 것을 권했다.

이어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잘 먹는 아이는 과식하지 않도록 신경쓰고, 입맛을 잃은 아이에겐 무리하게 먹이려 애쓰지 말 것" 을 강조했다.

글〓유지상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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