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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KAL 등 재조사 성적표···헤집기 쉬워도 뒤집기 어려웠다

중앙일보

입력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KAL기 추락사건,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수수 사건.

여권이 최근 ‘진실 규명’을 외치며 헤집기를 시도하는 과거사 논쟁 사안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재조사 요구가 나오거나 진행 중인 과거사 상당수는 이미 한 차례 이상 ‘다시 훑기’ 과정을 거치곤 했다. 의욕적으로 첫 삽은 떴지만 물리적 자료 부재와 접근의 한계 등으로 ‘미완’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일각에선 "실체적 규명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이를 '진실 규명'이라는 포장을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조사 대상이 됐던 주요 사안과 그 결과를 돌아본다.

①5·18 민주화운동 재조사(5차 진행중)

5.18 광주 민주화운동.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5.18 광주 민주화운동.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앙포토]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앙포토]

과거 4차례 조사가 이뤄졌고, 현재 5번째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발포 명령자 색출, 헬기 사격 여부, 집단학살 및 암매장 의혹 등 핵심 쟁점은 여러 차례 조사에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첫 번째 조사는 노태우 정부(1988년) 때 이뤄졌던 ‘5·18 청문회’다. 노 전 대통령이 사건 당사자였던 만큼 청문회 자체가 정치공방으로 번진 끝에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김영삼 정부(1995년)에서 이뤄진 검찰의 ‘역사 바로세우기 수사’에서는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목적 살인죄’가 인정됐지만, 전 전 대통령의 발포명령은 증거 부족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2007년)에서 국방부 과거사위가 재조사에 나섰지만 역시 발포 명령자 규명에는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2018년) 국방부 특조위는 “군의 헬기 사격이 확인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현재는 5번째 재조사가 진행 중이다. 2018년 2월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국회 통과로 진상조사위 설치 근거가 마련됐지만 자유한국당(현재 미래통합당)이 추천한 조사위원 자격 논란을 겪다 지난해 12월에 출범됐다. 진상조사위 활동 기간은 2021년 12월까지 2년 기한으로 1년 연장할 수 있다. 9명의 조사위원, 34명의 조사관, 국방부 지원단(20명) 등이 투입된다. 최대 쟁점은 ‘발포 책임자 규명’(헬기 사격 포함)이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여전히 왜곡ㆍ조작된 사실이 남아있어 이번에는 완결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한다”고 전했다.

②세월호 참사 재조사(3차 진행중)

세월호 침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세월호 침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6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은 참사의 흔적 [연합뉴스]

6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은 참사의 흔적 [연합뉴스]

과거 2차례 재조사가 이뤄졌다. 현재도 재조사(4ㆍ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 중이고, 이와 별개로 검찰 수사(대검찰청 세월호 특별수사단) 역시 이뤄지고 있다.

수십억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1기 세월호 특조위’는 그 자체가 논란에 빠졌다. 2016년 9월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의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중간점검 보고서만 내고 활동을 종료했다. 침몰 원인을 규명해 ‘사회적 공증’을 받는 데도 실패했다. 대검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지난달 28일 1기 특조위 진상 규명 국장 임용 절차를 중단시킨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2번째 조사는 ‘선체조사위’가 구성돼 진행했다. 선체조사위는 2018년 8월 보고서를 통해 “블랙박스 복원으로 초기 침수 시점을 실제와 가깝게 추정했다. D갑판 앞부분의 고정식 고박장치가 없었다” 등의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합의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두 권으로 나뉜 보고서를 제출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를 지나면서 발생한 기계 결함으로 급속하게 우선회하며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배가 기울어 침몰했다”(내인설)는 설명과 “외력 등 다른 요인의 존재를 배제할 수 없다”(외인설)는 주장이 맞섰다.

③과거사위 재조사(2기 출범 예고)

KAL 858기 폭파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KAL 858기 폭파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02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가족회 회원들이 재조사를 위한 국회청원을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가족회 회원들이 재조사를 위한 국회청원을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중앙포토]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전문으로 하는 국가기관으로 2005~2010년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군의문사 진상규명위’(2000~2004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2004~2007년, 국정원진실규명위)가 비슷한 사례로 꼽히지만, 과거사위의 활동 범위가 가장 넓었다. 5년간 1만1175건의 신청을 받아 8450건에 대해 진실규명 판정을 내렸다.

현재 논란이 되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도 국정원진실규명위가 ‘7대 우선 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해 조사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보 성향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진실규명위는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보고서를 냈는데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 대남공작조직의 주도로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재조사 이유로 지목된 ‘안기부 조작설’에 근거 없음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같은 결론이 내려진 뒤 별도 조사를 하려고 했던 과거사위도 유족들의 요청으로 조사를 중단했다.

④특정 사안 재조사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유족들이 행방불명 표지석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뉴스1]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유족들이 행방불명 표지석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뉴스1]

위 범주 안에 들지 않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과거사 진상조사에 나선 경우는 적지 않았다. 2000년 출범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는 2003년 10월 보고서를 냈는데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기보다 “공권력이 민간인, 특히 어린이와 노인까지 살해하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별 피해실태 파악에 주력했다. 지난 3월 발간된 ‘추가진상 보고서’ 역시 이같은 내용을 이어받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가 재조명했던 김학의·장자연 사건 등은 재조사 시작과 비교하면 끝이 미약한 경우였다. 지난해 5월 검찰 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과 관련해 “김 전 차관 등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뇌물을 받은 전직 검찰 고위 간부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지만, 핵심 의혹인 ‘별장 성접대 의혹’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증인을 자처한 윤지오씨 등장 등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던 장자연씨 사건도 “성접대·성폭력 의혹은 규명하기 어렵다”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한영익·정진우·김홍범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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