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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용수 할머니 절규를 음모론으로 왜곡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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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고령인데도 그제 1시간가량 계속된 2차 기자회견 내내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직접 겪은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중간에 감정이 복받친 대목에서는 몇 차례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저에게 남은 시간 별로 없다” 절박한 문제 제기 #할머니 목소리 경청하고 진상 낱낱이 밝혀야

할머니는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금에 이용했다”면서 윤미향(정대협 전 대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의 배신 행태, 위안부 운동의 재정립 방향, 한·일 청소년 역사 교육의 중요성 등에 대한 입장을 소상하게 피력했다.

고령을 의식한 듯 할머니는 “저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런 절박함에서 토해낸 문제 제기는 비판받는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절규를 새겨듣기는커녕 음모론을 흘리며 폄훼하는 세력이 있다니 놀랍다.

‘친여 방송인’ 김어준은 어제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관련 배후설을 생뚱맞게 제기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읽어 보면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앞서 김씨는 지난 13일 윤 당선인을 방송에 출연시켜 해명 기회를 주면서 감쌌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윤미향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가) 저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이실까 솔직히 납득이 안 된다”면서 “밥을 못 먹었다, 난방비가 없었다는 얘기가 돌아다니는데 사실일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구체적 문제 제기는 애써 외면하면서 기부금과 후원금을 엉터리로 회계 처리한 윤 당선인의 행태는 모른 척하거나 두둔하기에 바빴다. 마치 ‘윤미향의 대변인’ 같은 처신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억을 모아서 이를 기초로 위안부 피해 관련 진실 규명 노력을 해 왔던 마당에 이용수 할머니의 기억에 생채기를 내려는 움직임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윤 당선인은 그제 “기자회견장에 나오라”고 했던 할머니의 요청을 묵살했다. 그러면서 고구마 줄기처럼 제기된 숱한 의혹에도 침묵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정의기억연대가 해결해야 한다”며 발을 빼고 있다. 더불어시민당 공천에 개입했던 집권여당으로선 매우 무책임한 처사다.

윤 당선인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조만간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윤 당선인 일가가 집 다섯 채를 모두 현금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는 30일이면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기에 윤 당선인이 자칫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뒤로 숨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모든 의혹의 당사자인 윤 당선인 본인이 지금이라도 직접 빠짐없이 소명하고, 검찰 수사와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