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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트럼프 사용 설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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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 중이라는 소식은 그의 ‘고백’으로 알려졌다.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일주일 넘게 매일 한알씩 먹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신종 코로나바이라스 감염증(코로나19) 특효약이라며 ‘신의 선물’ ‘게임 체인저’라고 극찬했지만, 미 식품의약국(FDA)과 전문가들은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그 약이다.

코로나19를 치료한다는 근거도 부족한데 예방을 위해 먹다니, 의료계와 언론은 경악했다. 트럼프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고 증상도 없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따른다. 그의 대답은 “좋다고 생각하니까”였다. “그게 약을 먹는 이유가 되냐”고 기자가 반문할 정도로 설득력은 없다. 그의 기행을 두고 워싱턴에서는 여러 추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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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뉴스를 제공해 주의를 돌리려 한다는 해석이 있다. 트럼프가 국무부 감찰관을 부당하게 해임했다는 뉴스가 터진 직후였는데도 이날 미 언론 헤드라인은 “트럼프,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으로 도배됐다. 코로나19가 치료 가능하다는, 헛된 희망을 퍼뜨리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독감에 비유하거나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 사항의 연장선이다. 개인적 성향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심리, 끝까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아집의 표현일 수 있다.

‘왜 그럴까’보다 정확한 질문은 ‘왜 그렇게 보이려 할까’일듯하다. 실제로 약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도, 코로나19도 걸리지 않은 트럼프는 정상적으로는 이 약을 처방받기 어렵다. 백악관이 공개한 메모에서 주치의는 “우리는 치료로 인한 잠재적 이익이 상대적 위험보다 크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을 뿐 약을 처방했거나 복용 중이라는 언급은 없다.

트럼프가 약을 먹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꽤 있다. 몸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논리다. 먹는다고 믿는 사람은 2주 전 시중들던 개인 보좌 요원의 확진을 거론한다. 자칭 ‘세균 혐오자’인 트럼프가 혹시라도 걸릴까 두려워 복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 홍보를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트럼프는 제약회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이 회사 주요 투자자가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을 후원하는 큰손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가 약 이름을 처음 언급한 3월 19일 이후 처방 건수가 1월 초보다 6배 늘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코로나19 종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발상이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