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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재고 입력하는 단순 일자리 늘리는 대신, 기간제 2년 근무제도부터 손질을

중앙일보

입력

5대 그룹의 한 계열사에 재직 중인 김미경(36ㆍ가명) 씨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그에겐 4번째 직장이었다. 2년 가까이 일했지만, 당초 약속된 고용 기간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미래를 고민해 볼 참이다. 하지만 내심 다시 기업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나이가 만만치 않아서다.

[현장에서]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 충격에 대응해 일자리 156만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노인 일자리 등 약 60여 만개의 정부 일자리와 비대면 디지털 일자리를 55만개 이상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김 씨 같은 기간제 근로자들은 여전히 2년 이상 고용이 어렵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이 점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2년마다 사람을 뽑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직원을 내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2년마다 새로 사람을 뽑는 일 역시 기업에는 고역이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기업의 경우 전 직원 중 4.5~5%가량이 이런 기간제 근로자다. 이들은 2년마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한다.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기간을 2년으로 못 박을 게 아니라, 해당 기업이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어떨까. 새로 일자리 만들고, 규제를 푸는 것 못지않게 역효과를 내는 규제들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기간제 근로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중(中)강도’ 일자리야말로 경기 침체를 막는 단단한 방어막이다.

비정규직이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감과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기업이 기간제 일자리라도 꾸준히 늘릴 수 있게, 기간제 근로자들 역시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정부 돈을 풀어 열 재고, 데이터만 단순 입력하는 일자리만 늘리는 대신, 기존의 규제를 푼다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살릴 수 있다. 기간제 사원으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애타게 바라는 바다.

이수기 산업1팀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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