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자유거래시장 첫 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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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평양 시내 통일거리와 평양공항 인근의 순안구역에 건설된 시장을 지난 9월 초 개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제주도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을 위한 '백두산 성화 채화식'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방북한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외부에서 우리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 외국인을 대상으로 통일거리 시장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가 만난 30대 중반의 고려호텔 봉사원도 "통일거리 시장은 시설이 잘 돼 있어 통일거리뿐 아니라 중구역.평천구역 등 인근 주민들도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고 말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특히 북한 당국은 판매가격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국가가 정한 기준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화협의 다른 관계자는 "물건 가격은 품목별로 국가가격제정위원회가 정한 국정가격이 있지만, 품질과 수요.공급에 따라 시장마다 다른 판매가격이 정해진다"고 말했다.

이로써 북한 주민들은 처음으로 기존의 국영상점이나 암시장이 아닌 국가가 공식 조성한 시장에서 변동가격으로 물품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

또 북한은 올 봄 주민들이 갖고 있는 달러를 흡수하고 주민들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평양시 각 구역에 외화 교환을 전담하는 '협동거래소'를 설치, 북한 돈 공식 환율(1달러=1백42원)의 여섯 배가 넘는 9백원 선에 환전해 주는 '이중환율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상들은 지난해 7월 이후 나온 임금.가격 인상 등 각종 경제관리 개선 조치가 '계획경제'의 틀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북한 당국은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론 '시장경제 실험'에 본격 착수한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8월과 9월 두 차례 방북했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는 "북한이 점차 '시장사회주의'로 진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양=정창현 기자jch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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