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비’ 같은 용산 대규모 아파트 신축…공급 확대의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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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주택 8000가구 신축을 포함해 서울에만 7만 가구를 신규 공급하는 방안을 그제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10일)을 앞두고 나온 ‘수도권 주택 공급 기반 강화 방안’은 가뭄 속 단비 같은 공급 확대 대책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이 정부 들어 서울 도심에 내놓은 사실상 첫 대규모 공급 대책이기 때문이다.

정비창 부지에 8000가구 등 7만 가구 공급 #수요 억제에 치중한 부동산 정책 전환 기대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지난해 12·16대책까지 모두 18차례 대책을 쏟아냈지만, 가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시장 불안만 계속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존 대책은 수요 억제를 위한 대출 규제 강화 등에 집중됐다. 3기 신도시 건설 계획까지 내놨지만 정작 수요가 집중된 서울에는 제대로 된 대규모 공급 확대 방안이 빠져 있었다.

시장 안정의 핵심은 원활한 공급 확대인데도 정부는 본질을 외면하고 변죽만 울렸다. 부자와 서민의 부동산 자산가치 격차만 키우며 줄곧 치솟던 부동산 가격은 정부 대책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최근에야 겨우 하락세로 반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교통부가 뒤늦게라도 비현실적 정책에서 벗어나 눈에 띄는 공급 대책을 서울에 내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번 조치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기존 정책을 전환하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이번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급 확대의 핵심 중 하나인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방안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기간에 표를 의식해 마치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줄 것처럼 솔깃한 공약을 꺼냈었다. 하지만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쏙 들어갔다.

재개발 규제 완화 대책도 큰 방향은 좋지만 이번 대책 수준으로는 많이 미흡하다. 서울 강북의 경우 수십 년 된 노후 단독주택과 다가구·다세대주택 단지가 수두룩하다. 이들 지역에서 계획적인 대규모 재개발을 활성화해 양질의 주택이 많이 공급되도록 하려면 좀 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신규 택지가 극히 적은 서울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토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한 고층 개발을 유도하는 것은 유일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용산의 경우도 공급 확대 자체는 반길 일이지만, 공공임대 주택 비율이 과도하게 높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칫 공급 대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입지 조건이 좋아 땅값이 비싼 곳에는 민간이 중대형을 많이 공급해 수요를 충족시켜 줘야 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서울시가 청년 임대주택을 교통 요지에 대거 공급하고 있지만 임대료가 높아 현장에선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