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에서 345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4만600여명이 사망한 가운데 각국이 코로나 봉쇄에 따른 특정 제품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일본 등지에서 화장지 사재기가 벌어지고 유럽에서는 빵을 만드는 재료인 밀가루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국가마다 '동나는 아이템'은 서로 다르다.
봉쇄 기간 술 금지하자 반발로 자가 '밀주'성행 #멕시코인들 "맥주는 건들지 마" #집에 있는 시간 길어지며...홈 가드닝으로 '프라이버시 보호'
4일 타임스 오브 인디아, AFP 등 외신을 종합하면 스리랑카의 경우 '설탕'이 동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 3월 20일부터 스리랑카 정부는 코로나 봉쇄 기간 술과 담배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자 '기호품'을 구하기 어려워진 데 대한 '반발 작용'으로 집에서 직접 술 제조를 하는 이들이 급증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그 결과,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스리랑카 전통 술을 만드는 '밀주'가 유행했고 이에 쓰이는 주재료인 설탕이 동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자칫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값싼 가격에 밀주를 만들다 보면 '독성물질'을 포함한 메탄올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지난 1997년 밀주를 마신 주민 중 5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입원하는 등 크고 작은 밀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술 사랑'은 멕시코도 뒤지지 않는다. 전국적인 봉쇄 조치가 취해진 뒤 멕시코 내 대형 맥주 기업들이 맥주 생산을 잠시 중단하자, 멕시코인들은 맥주 사재기를 했다. 트위터에는 ‘맥주는 건드리지 마라’라는 의미를 담은 해시태그(#)까지 등장했다.
전 세계의 학교와 비필수 사업체들이 몇 주 이상 문을 닫은 결과, 일부에선 '국민 간식'이 동나는 일도 벌어졌다. AFP는 "이라크에서 긴 시간 집에 머무는 것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척들과 수다를 떠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그러려면 소금에 절인 해바라기 씨 간식이 필수다"라고 보도했다. 부모도 자녀도 보통이라면 직장·학교에서 보냈을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이 인기 간식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에서도 해바라기 씨 간식은 인기지만 이를 먹은 뒤 껍질을 뱉는 과정에서 침이 튈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는 자칫 비말이 튀면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대만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경기 중 선수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먹는 해바라기 씨와 '씹는 담배'를 금지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높여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생강과 레몬이 면역체계 개선에 좋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사재기하면서 부족사태가 일어났다. 튀니지에서는 '마늘 사냥'이 벌어졌다. AFP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런 민간요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퇴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칠레에서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식품의 하나로 참치캔이, 두바이에서는 주요 식재료 중 하나인 갈아놓은 커피콩과 쌀 수요가 급증했다고 AFP는 보도했다.
리비아는 종이 부족…"글씨 작게 써라" 아이들에 부탁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뒤 무장 세력이 난립한 리비아는 내전과 코로나19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코로나19까지 겹치자 학교 대신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쓸 종이를 구하는 일조차 사치가 됐다. AFP에 따르면 3명의 어린 자녀를 둔 전업주부 나디아 알-아베드는 "용지가 다 떨어져 남편 사무실의 오래된 서류들을 빼내 거기에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작은 글씨로 써달라고 애원했다"고 덧붙였다.
집에 있는 시간 길어지자…'식물 가림막'으로 프라이버시 보호
재택 시간이 늘며 뜻밖에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템도 있다. AFP는 "호주 전역에서 홈 가드닝이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닝스 웨어하우스의 알렉스 뉴먼 씨는 "지난 한 달 동안 모든 식물이 인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가드닝 방법도 소개하는 이 회사의 콘텐트 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빨리 자라는 식물'에 대한 정보라고 한다.
AFP는 "재택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식물을 이용해 (이웃의 시선을 차단할) 가림막을 만들고 있다"면서 "이것이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