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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항체검사와 면역증명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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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세상은 종말 문턱에 서 있는 듯했다. 생존을 걱정하고 정상적 일상 복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거 와중에도, 연휴 기간에도 사람들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조심스럽게 버텨왔다. 하지만 이제 생활방역을 통한 일상 복귀를 논의하는 상황이 너무 낯설게 느껴질 만큼 한국 사회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것이 틀림없다. 마치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감사한 마음과 신중한 새 출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일상 복귀를 위한 항체검사 필요 #‘면역 여권’ 필수인 새로운 일상 #새 출발 기초는 인권과 민주주의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피해로 인해 완전히 과거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감염병이 가져온 엄청난 충격이 사회 전체를 해체하고 재편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코로나19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질병이 단순히 병원체를 둘러싼 의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대처방식에 따라 생사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 세계의 상황과 비교해 한국이 빠르게 생활방역으로 전환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은 공격적인 “검사, 추적 그리고 격리”라는 방역 원칙 덕분이었다.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항체검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되고 있다. 이 검사는 전체 인구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회복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유용하다. 과학자와 방역 당국은 모두 겨울에 다시 코로나19는 돌아올 것이고,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18년 스페인독감의 경우 2차, 3차 유행에서 돌아온 독감은 훨씬 강력하고 치명적이었고 최소 2천만 명이 희생되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고, 몸속에 항체가 형성되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과학 판도라상자 5/4

과학 판도라상자 5/4

병원체가 몸에 잠입하면 우리의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를 막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마치 적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군대를 이동시키는 것처럼 면역세포는 병원체가 활동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침입자의 존재를 먼저 알려주고 경고 신호를 보내는 척후병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항체이다. 항체의 생성 여부는 결국 병원체의 침입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항체가 생성과정과 지속기간에 관한 정보가 아직 부족하다.

항체는 침입하는 병원체에 따라 그 지속기간이 각각 다르다. 수두의 경우, 백신을 접종하거나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성되는 면역항체는 한번 생성되면 평생 지속된다. 반면 독감바이러스의 일종인 신종 플루의 항체가 유지되는 기간은 2년에서 10년 정도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수두나 신종 플루 바이러스와는 그 성질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스 바이러스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스의 경우 항체가 지속되는 기간은 2~3년 정도로 알려진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항체검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형성과 특성을 시급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항체검사의 기본적 목표는 질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의 규모를 알아보는 것이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정상적 경제활동에서 시작된다. 항체검사를 비롯해 코로나19와 관련된 보건정보의 처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생활 침해와 차별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지하철이나 비행기를 탈 때 그리고 쇼핑을 위해 백화점을 갈 때도 발열 체크가 필수적인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면 여행이나 직업 선택에 제약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면역 여권과 같은 증명서를 만들어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이 확인된 사람만 받아들이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질병의 확산 방지와 생명 보호를 위해 일시적으로 개인정보의 노출을 감수하고 일상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는 단순한 경제활동 복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사생활 보호과 자유 보장은 타협할 수 없는 소중한 민주주의의 자산이다. 터널을 먼저 빠져나온 우리의 행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시험하는 또 다른 본보기가 될 것이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