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통]기재부 차관은 왜 ‘무역적자’를 미리 고백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29일 “4월에 무역수지 적자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5월 1일 발표하는 지표 내용을 사실상 미리 알려줬다. 이례적이다. 시장은 ‘예방 주사’ 성격으로 봤다. 갑작스러운 무역적자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이 받을 충격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그럴만하다. 그간 한국 경제는 ‘수출 〉수입’을 당연시해서다. 2012년 1월 이후 지난 3월까지 8년 넘게 그래왔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 차관은 이날 "4월에 무역수지 적자가 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 그렇게 됐다. 연합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 차관은 이날 "4월에 무역수지 적자가 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 그렇게 됐다. 연합

무슨 일

99개월 만에 무역적자가 났다. 김 차관이 예고한 대로다. 4월 무역수지는 9억5000만 달러 적자다.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이만큼 적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에 낯선 일이다. 무역수지 적자를 경험한 건 2012년 1월이 마지막이다. 전 세계는 ‘한국=무역 흑자 국가’로 여겨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에 “무역 흑자를 줄이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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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걱정 말라는데

정부는 무역적자를 예고하면서 “일시적"이라고 했다. "적자가 부정적인 징후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에 대한 방역을 잘했고, 국내 제조업은 정상 가동 중이며, 내수도 비교적 양호한 까닭에 수입 수요가 덜 줄었다는 설명이다.

걱정되는 이유

정부의 말과 달리 '일시적'이 아닐 수 있다. 원유 100% 수입국인 한국 경제에 저유가는 수출보다 수입을 더 줄여왔다. 에너지 원료를 싸게 들여올 수 있어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요즘 같은 초저유가 시대엔 무역수지 흑자가 늘어야 한다. 코로나 19에 따른 수출 절벽은 이런 공식도 무너뜨렸다. 그래서 99개월 만에 나타난 무역 적자는 심상치 않은 신호라는 의견도 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19 여파에 따른 수출부진 심화로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화·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게 중요한 건

수출이 줄고 무역수지가 나빠지면 경상수지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 유사한 상품수지에 서비스·소득·경상이전수지를 더한 지표다. 이 지표도 흔들리고 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4월 경상수지는 적자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4월에도 적자였는데, 5월부터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는 다를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수출 부진은 이제 시작”이라며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뒷받침한 경상수지 악화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상수지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경제 상황을 판단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다. 한국 경제가 좋은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데 경상수지 흑자 덕이 컸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악재가 더해지게 된다. 경상수지 악화 장기화로 신용도가 떨어지면 정부나 기업의 해외 차입 비용이 늘어난다. 외국인 투자도 줄어들 수 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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