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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 폭탄’ 우레탄폼 작업, 안전장치 없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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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호 11면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지하 2층, 지상 4층) 신축 공사장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소방당국 등 7개 관계 기관이 1일 합동으로 2차 현장감식을 벌였다. 이번 사고로 지하 1·2층에서는 8명, 지상 1·3·4층에서는 각 4명, 지상 2층에서는 18명 등 모두 38명이 희생됐다. 이날 감식은 폭발과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1, 2층에서 화원(火原)을 규명하는 작업이 주로 이뤄졌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원인 #우레탄 주입 때 고온 유증기 발생 #환기 안 돼 실내 가득 차 있다 폭발 #불길과 동시 유독가스에 휩싸여 #지하서 산소용접기 발견, 감식 의뢰

당시 이곳에선 우레탄폼 희석 작업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층에선 전기와 도장, 설비 등 9개 업체 78명의 근로자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방당국 등은 우레탄폼 작업을 하면서 발생한 유증기가 외부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확인되지 않은 불씨 등 화원을 만나 폭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하 1층과 지하 2층에서 발견된 시신 8구의 경우 대부분 폭발 등 화상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폭발 때문에 패널 등이 파손되고 화염으로 소실된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물류창고 지하 1·2층에서 산소용접기와 절단기, 전기톱, 파이프 등 건설현장 기자재 13점을 수거했다.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작업 공구들이지만 절단기 등은 사용할 때 불꽃 등이 튈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하부에서 산소용접기가 발견됐으며, 지상층에서도 유사한 용접기가 발견되는 등 일반적인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공구가 발견돼 수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발견한 산소용접기 등 작업 공구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화재 원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감식을 의뢰했다.

지상층의 경우 화염에 의한 손실보다는 주로 그을음 등이 확인됐다. 희생자들이 유독가스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방 당국도 사고 당일 열린 브리핑에서 “지상층 희생자들의 경우 화재로 인한 화상보다는 질식 등으로 인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방 관계자는 “폭발과 함께 우레탄폼과 가연성 물질인 샌드위치 패널 등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했다”며 “유독가스가 지상으로 유입이 되면서 피해자들이 대피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레탄폼 등으로 인한 유독가스의 경우 한 모금만 마셔도 의식을 잃는다고”고 덧붙였다.

우레탄은 단열성능 효과가 탁월하고 가공성이나 시공성, 접착성 등이 우수해 냉동창고의 단열재나 경량구조재, 완충재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번 화재 현장에서도 건물 전체 등에서 우레탄을 창고 벽면 등에 주입하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우레탄은 주입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서로 분해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최고 섭씨 200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증기를 발생한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창고 단열시공을 할 때 용이성·경제성을 따져 대부분 우레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유증기가 반드시 발생한다”며 “환기를 제대로 안 하고 인화성 공정을 진행하면 폭발성 화재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안전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전날 물류창고 건축주인 (주)한익스프레스의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실과 감리업체, 설계업체 등 5곳을 압수 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분석 중이다.

이천·수원=최모란·권혜림·이우림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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