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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게이트’로 후진하던 수입 디젤차, 부르릉~ 가속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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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호 13면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심모(45) 사장은 최근 낡은 승용차를 교체하기 위해 고민하다 수입 디젤(경유)차를 계약했다. 업무 특성상 장거리 운행이 많아 경제적으로 휘발유(가솔린)차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휘발유보다 경유 가격이 싸고, 연비도 더 좋기 때문이다. 그는 “전반적으로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휘발유차보다 이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가격 할인도 많이 해줘 업무용으로 쓰기 위해 계약했다”고 말했다.

판매량 줄다 작년 4분기부터 상승세 #폴크스바겐 최대 22% 깎아줘 유혹 #1분기 판매 작년 동기보다 7% 늘어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원가 상승 #유가 하락, 경제성 떨어져 불투명

2015년 배출가스를 조작한 이른바 ‘디젤게이트’ 이후 주춤하던 수입 디젤차 판매가 최근 다시 늘고 있다. 디젤게이트는 독일의 완성차 업체인 폴크스바겐이 2015년 9월 이미 판매한 디젤차 1070만대의 배기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고 시인한 사건이다. 이 회사는 당시 환경 기준치를 맞추기 위해 주행 시험 때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디젤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악화하면서 전반적으로 디젤차의 비중이 줄고 있지만, 유독 수입차 시장에선 디젤차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평균 50% 정도 줄던 수입 디젤차 판매량은 지난해 4분기 상승세로 돌아섰다. 4분기에만 전년보다 24% 이상 늘었다. 올 들어서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1분기 수입 디젤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증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입 디젤차는 디젤게이트가 터진 2015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세다. 지난해에는 111만5202대(등록 기준)로 전년보다 8만3880대가 더 늘었다. 이 기간 국산 디젤차 판매가 5만5000대가량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현상은 수입차 업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격 할인 카드를 적극 내민 덕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폴크스바겐만 해도 올 초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투아렉을 출시하면서 10% 넘게 가격을 할인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말 승용 디젤차인 아테온을 최대 22% 깎아주기도 했다. 아우디·BMW 등도 디젤차를 대폭 할인해 판매했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디젤게이트 이후 독일 완성차 업체가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아오기 위해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펴고 있다”며 “마침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여파로 일본차의 판매가 주춤하면서 디젤차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차는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이 큰 편인데, 하이브리드차는 환경·경제적으로 디젤차의 대안으로 꼽힌다.

수입 디젤차가 늘면서 디젤차를 줄여나간다는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전체 등록 차량 중 디젤차 비중은 지난해까지 되레 상승세를 보이다 지난해에야 소폭 감소했다. 정부는 2018년 미세먼지 주범의 하나로 디젤차를 지목하고 주차·통행료 등을 할인해 주던 ‘클린디젤’ 정책을 폐기했다. 이와 함께 노후 디젤차 폐차 지원 정책도 내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자동차 전문가는 “정부의 디젤차 감축 정책은 노후 디젤차에만 집중돼 있다”며 “디젤차를 줄이려면 배기가스 규제 강화나 경유세 인상 등으로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장엔 디젤차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 김학용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가 지난해 4월 폐차보조금을 받은 46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폐차 후 차를 구매한 408명 중 251명(61.5%)이 다시 디젤차를 선택했다. SK엔카닷컴이 지난해 10월 주요 수입차의 잔존가치(일정 기간 사용 후 예상되는 가치)를 조사한 결과 디젤차가 휘발유차보다 높았다. 박홍규 SK엔카 사업총괄본부장은 “잔존가치가 높다는 건 그만큼 시장에 수요가 있다는 얘기”라며 “디젤게이트 이후 디젤차 공급이 준 것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가 1월 선보인 대형 SUV인 GV80도 당시 디젤 모델로만 누적 계약 2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디젤차는 그러나 전반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주요국이 디젤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유가 하락으로 인기 요인인 경제성이 희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젤차의 배기가스 조작도 끊이지 않는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에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포르쉐코리아㈜의 배기가스 조작을 적발해 인증 취소와 과징금 등의 조치를 내렸다. 대상 디젤차는 8종 총 1만261대로, 환경부는 이들 업체가 특정 상황에서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한 요소수 분사량을 의도적으로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게이트도 현재 진행형이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10월 폴크스바겐 소유자 4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집단소송 재판이 시작됐고, 영국에서는 지난해 12월 10만 명이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 엔진은 기본적으로 다른 내연기관보다 제조 단가가 비싼데 배기가스 규제 강화 여파로 생산원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디젤 엔진에 돈을 들이기보다는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를 개발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도 당장 중형 SUV인 쏘렌토·싼타페의 디젤 모델을 2종에서 1종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 측은 “국내는 물론 중국·미국 등지가 해마다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디젤 모델은 줄이고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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