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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서 불났는데…지상 2층서 18명 목숨 앗아간 '그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사건에 대해 경찰과 소방당국은 지하 2층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사망자 38명 중 18명이 지상 2층에서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유독가스'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지난달 30일 오전 경찰,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지난달 30일 오전 경찰,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 수사본부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불이 난 물류창고의 모든 층(지하 2층, 지상 4층)에서 시신이 나왔다. 지하 2층과 지하 1층, 지상 1층에선 각각 4구의 시신이 나왔다. 지상 4, 4층에서도 각각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특히 지상 2층에서만 1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지목한 화재 발생 추정 지점은 '지하 2층'이다. 당시 지하 2층에선 우레탄폼 희석 작업과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층에선 전기와 도장, 설비 등 9개 업체 78명의 근로자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방당국 등은 우레탄폼 작업을 하면서 발생한 유증기가 외부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확인되지 않은 불씨 등 화원을 만나 폭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하 1층과 지하 2층에서 발견된 시신 8구의 경우 대부분 폭발 등 화상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폭발 때문에 패널 등이 파손되고 화염으로 소실된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이천 냉동·냉장 물류창고 공사현장.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천 냉동·냉장 물류창고 공사현장.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하 희생자는 화상, 지상 희생자는 질식 추정 

지상층의 경우 화염에 의한 손실보다는 주로 그을음 등이 확인됐다. 희생자들이 유독가스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방 당국도 사고 당일 열린 브리핑에서 "지상층 희생자들의 경우 화재로 인한 화상보다는 질식 등으로 인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방 관계자는 "지상 2층에 가장 많은 인부가 모여서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폭발과 함께 우레탄폼과 가연성 물질인 샌드위치 패널 등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했는데 이게 지상으로 유입이 되면서 피해자들이 대피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레탄폼 등으로 인한 유독가스의 경우 한 모금만 마셔도 의식을 잃는다고"고 덧붙였다.
우레탄은 단열성능 효과가 탁월하고 가공성이나 시공성, 접착성 등이 우수해 냉동창고의 단열재나 경량구조재, 완충재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번 화재 현장에서도 건물 전체 등에서 우레탄을 창고 벽면 등에 주입하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우레탄은 주입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서로 분해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최고 섭씨 200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으며, 유증기를 발생한다.

지난달 29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1일 소방관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당시 폭발과 함께 불길이 건물 전체로 확산하면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최모란 기자

지난달 29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1일 소방관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당시 폭발과 함께 불길이 건물 전체로 확산하면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최모란 기자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레탄 폼으로 인한 화재는 대형인 경우가 많다"며 "물류창고 단열시공을 할 때 용이성·경제성을 따져 대부분 우레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유증기가 반드시 발생한다. 환기를 제대로 안 하고 인화성 공정을 진행하면 폭발성 화재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이 합동 감식 과정에서 건물 안에 환기장치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졌는지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준공 전 건물이라 소방시설 등 갖춰지지 않아 

여기에 준공 전 건물이라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 23일 착공했으며 올해 7월 중 완공 예정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정률은 85%가량으로 골조공사를 마무리한 뒤 내부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건물을 완전히 지어야 방화구역을 나누고 소방시설을 설치하는데 이런 예방장치도 없어서 불이 더 급속도로 퍼졌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2차 현장감식 등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희생자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파악할 예정"이라며 "현장 근로자들과 공사 현장 관계자들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천=최모란·이우림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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