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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5월엔 사랑하는 이에게 손 편지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0)

요즘은 누구나 다양한 글을 쓴다. 각종 SNS를 통해 사진이나 영상이나 짧게 뭔가를 남긴다. 쓰기도 쉽고 지우기도 쉽다. 나 역시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사용 중이다. 그런 중에도 가끔 열어보는 종이 노트에 쓴 일기는 어떤 기쁨과도 바꾸지 못한다.

나는 오래 육아일기를 써왔다. 물론 최근에는 거의 쓰지 못하지만 참 다행히도 두 아이 키우는 내내 일기를 썼다. 지금도 책장에는 그때 다년간 썼던 일기들이 꽂혀있다. 일기를 펼쳐보면 그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뉴스도 적혀 있고 날씨도 기록되어 있다. 둘째를 낳으러 병원 가기 전날 밤 자정에 쓴 일기도 있다. 두 아이가 언제 걸음마를 뗐는지, 태어나 언제 처음 머리와 손톱을 깎았는지 배꼽은 생후 며칠째 떨어졌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 다 큰 딸아이는 가끔 자신의 성장기록이 담긴 내 일기를 꺼내 읽으며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다고 웃는다. 오늘 우연히 그 노트를 펼쳤다. ‘내가 이런 것도 적었구나’ 전혀 기억 못 하는 내 마음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중 한 페이지에는 내가 부모님께 쓴 편지도 기록되어 있다. 무심코 읽어봤다. 연도를 봤더니 1996년 7월에 쓴 편지였다. 역으로 계산해 보니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때다. 지금 돌아보면 내 큰 아이보다 어렸을 때다. 내용은 이렇다.

오늘 우연히 그 노트를 펼쳤다. ‘내가 이런 것도 적었구나’ 전혀 기억 못 하는 내 마음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중 한 페이지에는 내가 부모님께 쓴 편지도 기록되어 있다. [사진 Pixabay]

오늘 우연히 그 노트를 펼쳤다. ‘내가 이런 것도 적었구나’ 전혀 기억 못 하는 내 마음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중 한 페이지에는 내가 부모님께 쓴 편지도 기록되어 있다. [사진 Pixabay]

아버지, 어머니
그간도 안녕하셨는지요. 두 분이 이 편지를 읽으실 때는 의아해하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간편한 전화도 있지만, 전화로는 다 드릴 수 없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수없이 망설인 끝에 이 글을 씁니다. 자주 편지글을 올리려는 마음은 간절한데 하는 것 없이 뭐가 그리 바쁜지, 생활에 쫓기다 보니 이제야 펜을 들었습니다. 이제 생후 두 달 된 둘째 아이 재워놓고 저녁 준비하다가 부모님이 생각나서 이 글을 씁니다. 지나온 날을 돌아볼 때 두 분이 저희 사남매를 낳고 기르신 것이 얼마나 힘겨우셨을까 생각해봅니다. 큰 아이 하나 키울 때도 부모 된 심정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지만 둘째를 낳아보니 자식 하나 기르던 일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생각보다 훨씬 힘겹고, 마음 씀씀이가 바쁩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넉넉지 않은 생활 중에 이 세상을 살아가며 두 아이 먹이고 입히려니 몹시 힘든 것을 깨닫습니다.

어려서 사춘기 때는 부잣집 친구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갖고 싶은 것을 사는 친구, 비싸고 좋은 옷 입는 친구, 학교 공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 잠시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두 분 부모님께 크나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좋은 환경을 부러워했던 내 모습이 한없이 못나 보이고 부모님께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느꼈습니다. 요즘 저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어 주지 못할 때의 부모님 심정을 많이 깨달으며 생활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는 성실하고 강인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내로서 인자하고 정겨운 어머니로서 자리를 굳히고 지켜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언제나 제 곁엔 부모님이 계시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제 걱정 조금도 하지 마세요. 이 세상 어떤 거칠고 사나운 그 무엇이 제 앞에 닥쳐와도 저는 꿋꿋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월의 무상함 속에 저희 사 남매 기르시느라 두 분 참 많이 야위셨습니다. 부모님 뒷모습을 말없이 보노라면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 때문에, 저희 기르시느라 잃어버린 삶을 이젠 저희가 찾아드리고 돌려드려야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부모님께 효도하고 늘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땀 흘리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낳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쯤이면 아버지 어머니께 갑작스레 날아든 딸의 편지가 엉뚱하다 느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사 남매를 대표해 드리는 마음 고백입니다. 부모님 부디 건강하시고, 늘 지금처럼만 곁에 계셔 주세요. 반드시 효도하는 자식이 되겠습니다. 앞뒤 없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드릴 말씀이 있으면 편지 올리려고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1996년 7월 6일. 막내딸 명희 올림.

시한부 삶을 사는 우리, 올해 돌아오는 가정의 달에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편지 한 통 써보는 것은 어떨까. 나도 예쁜 꽃 편지지 사러 문구점에 들러봐야겠다. [사진 Pixabay]

시한부 삶을 사는 우리, 올해 돌아오는 가정의 달에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편지 한 통 써보는 것은 어떨까. 나도 예쁜 꽃 편지지 사러 문구점에 들러봐야겠다. [사진 Pixabay]

이 편지를 시작으로 나는 오래도록 생각날 때마다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편지는 말로 고백 못 했던 내용을 표현하기 참 좋았다. 24년 전 쓴 이 편지를 다시 읽는 지금, 아버지는 이미 예전에 하늘로 가셨고 이젠 늙으신 엄마만 홀로 남으셨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아직 나는 효도다운 효도를 못 한 못난 딸이다. 가슴이 젖는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더 늦기 전에 모녀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24년 뒤엔 또 어떤 사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24년 뒤면 내 나이 팔십이 코앞이다. 시한부 삶을 사는 우리, 올해 돌아오는 가정의 달에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편지 한 통 써보는 것은 어떨까. 나도 예쁜 꽃 편지지 사러 문구점에 들러봐야겠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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