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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桑楡之收<상유지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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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31면

한자세상 4/25

한자세상 4/25

중국 역사에서는 강대했던 한(漢) 제국마저 반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왕조가 둘로 나뉘었다.

후한(後漢)의 창업 군주 유수(劉秀)는 28인의 장수가 도왔다. 황제의 오른팔 풍이(馮異)는 남들이 공을 다툴 때마다 늘 한 발 빠져 나무 옆에 서 있었다 하여 ‘대수장군(大樹將軍)’으로 불렸다. 창업 이듬해 눈썹을 붉게 물들인 적미(赤眉)군이 수도를 유린했다. 황제는 피폐한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 토벌보다 회유해 투항시키라고 풍이에게 명령했다. 함께한 등우(鄧禹)와 등홍(鄧弘)은 생각이 달랐다. 강공을 원했다. 적미군은 교활했다. 거짓으로 패한 척 달아나며 굶주린 관군을 유린했다. 등우와 등홍을 구하던 풍이마저 병사 대부분을 잃었다.

풍이는 심기일전했다. 병사를 적미군과 똑같이 변장해 매복시켰다. 이튿날 적미군 1만여 명이 풍이의 선봉대를 공격했다. 풍이는 구조에 적은 병력만 투입했다. 풍이군의 병력이 적다고 오판한 적미군은 총공세에 돌입했다. 해가 기울자 적병의 기력이 쇠했다. 풍이의 복병이 사방에서 총반격을 시작했다. 같은 차림의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한 적미군은 당황해 무너졌다. 풍이는 적미군 8만여 명의 항복을 받아냈다. 동쪽으로 패주한 적미군 10만도 곧 투항했다.

황제는 친서로 승리를 축하했다. “적미를 평정함에 병사의 노고가 크다. 초반에 비록 패해 퇴각했으나 마침내 분연히 일어났다. 가히 아침에 잃었다 저녁에 다시 찾아 거두었다고 할 만하다(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동쪽 모퉁이다. 아침을 말한다.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다. 지는 해가 나뭇가지에 걸리므로 저녁을 뜻한다. “실지동우 수지상유(失之東隅 收之桑楡)”는 아침에 잃었지만 저녁에는 거둔다는 말이다.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 풍이열전에 적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화위복이다. 줄여 ‘상유지수(桑楡之收)’라고 한다. 황제는 보답을 잊지 않았다. 풍이가 창업 과정에서 덩굴과 가시를 끊고 잘라 자신을 도왔다며 그의 피형참극(披荊斬棘)에 사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세계가 전례 없는 불황이 시작됐다. 풍이는 피형참극과 변장술로 반전에 성공했다. 실업과 도산의 공포에 휩싸인 개인과 기업은 물론 총선에 참패한 보수와 야당 모두 획기적인 반전이 절실하다. 아직 동쪽 모퉁이를 돌았을 뿐이다. 해 질 녘 수확을 꿈꾸며 반전을 도모할 때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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