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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7000억’ 걸린 방사광가속기 유치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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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4·15 총선 속에서도 전국을 달군 뜨거운 감자가 있다. 사업비 1조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인 ‘4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전이다. 정부는 유치 신청을 한 지자체 4곳에 현장조사 등을 거쳐 5월 7일께 입지를 선정·발표할 예정이다.

방사광가속기는 태양광보다 100경(京) 배나 밝은 빛을 이용해 극미세 물체를 분석·관찰하는 첨단 장비다. 단백질·바이러스·나노소자 분석 등을 통해 바이오·헬스·반도체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현재 이 사업에는 강원(춘천시), 경북(포항시), 전남(나주시), 충북(청주시)이 경합 중이다.

강원도는 수도권과 40분대 출퇴근이 가능한 점을 강점으로 꼽는다. 수도권 인근에 첨단시설이 구축되면 반도체와 부품 분야에서 국내 판도를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경북도는 방사광가속기가 갖춰진 선진 도시라는 점을 내세운다. 기존 포항 포스텍 내 방사광가속기와 연계하면 사업비나 사업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전남도는 2022년 3월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와 나주의 한전 본사와의 시너지효과를 강조한다. 호남권에는 대형 첨단연구시설이 전무하다는 점도 유치를 주장하는 근거다. 충북도는 전국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을 내세운다. 전국에서 2시간 내 접근이 가능하고, 대전 대덕연구단지 같은 과학기술 인프라가 갖춰진 점을 부각한다.

경북 포항시 포스텍에 전시된 방사광가속기 모형. [중앙포토]

경북 포항시 포스텍에 전시된 방사광가속기 모형. [중앙포토]

지자체들이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은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에 따르면 이 사업을 유치하면 6조7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 내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조40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13만7000명에 달한다.

워낙 경제효과가 큰 탓인지 사업 유치를 둘러싼 잡음도 많다. “국가균형발전과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사업이 정치논리에 밀리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최근 호남권과 충청권에선 방사광가속기를 ‘총선 당선인의 시험대’로 보는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4·15총선과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방사광가속기를 전남에 구축하겠다”고 말했다가 충북 등에서 반발하자 발언을 번복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방사광가속기 입지를 선정하는 데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 첨단산업 유치를 통한 ‘국가균형발전’ 효과가 그것이다. 유치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들 또한 각각의 강점을 내세워 ‘최적지’임을 주장하는 만큼 절묘한 저울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로 장기 불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전국 지자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해본다.

최경호 광주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