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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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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는 우리 동네나 도시가 아니다. 우리 지역도 아니고 이탈리아나 유럽도 아니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 사회’는 ‘인류 사회 전체’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

파올로 조르다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고, 작가가 사는 로마가 봉쇄됐다. 지난 2월 마지막 날 첫 장을 쓰기 시작한 에세이집이 번역돼 나왔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자유지만 가택연금 상태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의 능력은 자신에게 가하는 형벌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은 신중함뿐이다.”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 날수를 세면서 슬기로운 마음을 얻자.” 전대미문 전염의 시대를 통과하는 작가의 통찰이 공감을 자아낸다.

작가는 물리학 박사 출신이다. “작년 여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가 어떤 결과를 발생시켰는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 아직 이름조차 짓지 못한 미생물들은 곧 새로운 터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인간보다 더 나은 번식지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수효가 많은 데다 더욱더 증가할 것이고, 사방팔방 움직이며 수많은 관계를 맺는, 미생물 입장에서는 최적의 숙주가 아닌가?” 흘려들어서는 안 될 얘기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