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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랑 막강 핵항모, 코로나에 무력화되자 ‘네 탓’ 신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랑스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함이 대대적인 성능 개선에도 불구하고 출항 1년 3개월 만에 철수하는 신세가 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핵 공격까지 가능하다는 막강 항공모함이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가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발목이 잡히자 군 내부에서는 책임 공방까지 벌어지는 형국이다.

성능 개선 후 첫번째 임무 수행에서 난관 만나 #라팔 전투기로 핵공격까지 가능한 최강 전투력 #코로나에 속수무책...선내 감염경로 파악 못해

12일(현지시간) 샤를 드골함이 입항한 프랑스 남부 툴롱 군항에 확진자들을 이송할 구급차 등이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샤를 드골함이 입항한 프랑스 남부 툴롱 군항에 확진자들을 이송할 구급차 등이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의 함정 내 확산으로 지난 12일 지중해 연안의 모항인 툴롱 해군기지에 돌아온 샤를 드골함은 현재 재출항을 기약하기는커녕 비판 대상으로 전락했다. 작전을 계속하다가 승조원 총 1760명 중 59%인 104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19일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한 해군 장성을 인용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서양 연안 브레스트항에 샤를 드골함이 정박한 건 홍보라는 정치적 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과 마찬가지로 샤를 드골함의 함장이 코로나19 감염 발생에 따른 작전 중단을 상부에 요구했다가 묵살 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에릭 라보 프랑스 해군 대변인은 “군의 대응에 분노하는 심정은 알지만, 군이 대원들의 생명을 놓고 장난을 쳤다는 식의 루머를 방치할 수는 없다”고 이를 일축했다.

샤를 드골함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붙은 건 프랑스 내 해당 함정의 위상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1989년 건조가 시작돼 2001년 취역한 샤를 드골함은 유럽 유일의 핵추진 항모이다. 핵탄두 미사일을 장착한 함재기 라팔 덕분에 핵 공격이 가능한 세계 최고의 항모로 꼽혀왔다. 라팔 전투기를 비롯해 미국제 E-2 조기경보기 등 4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다. 전단으로는 호위함 2척, 핵 공격 잠수함 1개 등을 이끈다.

취역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지원작전에 참가하는 등 여러 작전에서 위력을 입증했다. 특히 2015년 1월 파리에서 발생해 17명의 사망자를 낸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직후 걸프 해역에 파견돼 IS 등 이슬람 과격조직들에 대한 공습작전을 주도한 바 있다.

그러다가 2017년 2월 임무를 중단하고 툴롱 해군기지에서 18개월간 성능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47개 크기에 맞먹는 독에서 하루 평균 200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2기 원자로에 향후 20년간 쓸 새 핵연료를 주입했고, 함재기의 이·착함을 유도하는 유도장치와 레이더, 전투통제 시스템을 개선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이 무려 13억 유로(1조7000억원 상당)였다.

이후 샤를 드골함은 지난해 1월 21일 IS 격퇴전인 '샤말' 작전과 나토군과의 연합훈련 등을 위해 모항을 출항했지만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 임무 수행을 정상적으로 끝내지 못한 채 귀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샤를 드골함에서 만 하루를 체류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전투태세 유지에 심혈을 기울여온 터라 프랑스군은 더욱 뼈아픈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함정 내로 퍼졌는지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프랑스군의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샤를 드골함은 지난 3월 13~15일 브레스트항에 정박했다가 출발한 이후 외부 접촉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스트에서 새로 합류한 52명 선원은 이미 직전에 14일간의 자가 격리를 거치면서 코로나19를 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 내에선 이런 상황 때문에 군 당국이 후속 대처를 안일하게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브레스트항을 출항한 지 3주가 지나면서 코로나19 의심 대원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잠복기 2주를 훨씬 넘긴 시점이었다.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지난 17일 하원에 출석해 “코로나19 의심환자가 36명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이달 7일이었다”며 “당시에는 확산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작전을 계속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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