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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들이 가난 도둑질"…대학생들 '아싸 브이로그'에 분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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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청년(왼쪽)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 사진 픽사베이,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캡처]

혼자 있는 청년(왼쪽)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 사진 픽사베이,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캡처]

“‘아싸 브이로그’를 올리고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고민 없이 그 정체성을 소비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반성하길 바란다.”

팔로어 39만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최근 올라온 글이다.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 브이로그’는 ‘아웃사이더’라고 자청하는 대학생이나 크리에이터가 홀로 대학생활을 보내는 등 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일상을 보여주는 동영상 콘텐트다.
글쓴이는 “세상에 어떤 아싸가 자기 일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릴 생각을 하겠나”라며 “그냥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와 아싸라는 말이 유행하니 그냥 유행에 따라 옷 바꿔입듯이 정체성 갈아입는 거 역겹다. 누군가에겐 정말 큰 고민일 수 있는 가난과 사회적 고립이 그들에겐 그냥 패션이고 유행이고 몇 번 입다 버릴 옷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엔 찬반 댓글 수 백개가 달렸다.

‘도둑맞은 아싸’에 분노하는 청년들 

'아싸 브이로그' 관련 글에 달린 댓글.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의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아싸 브이로그' 관련 글에 달린 댓글.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의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최근 온라인에서는 ‘아싸 브이로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아싸가 가진 사회적 고립감을 콘텐트로 이용해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퍼지면서다.

‘아싸 브이로그’를 두고선 ‘도둑맞은 아싸’라는 말도 나온다. 인싸인 사람이 아싸인 척 행동하는 걸 비꼬는 것이다. 이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따온 말이다. 『도둑맞은 가난』은 가난한 여주인공이 같은 공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이며 방학 동안 공장으로 가난 체험을 하러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느낀 배신감을 다룬 내용이다.

아싸 브이로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며 이를 올렸다가 사과에 나선 이도 있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6만 명에 이르는 한 대학생 크리에이터 A씨는 지난 14일 아싸 브이로그를 게재한 것에 대한 해명 영상을 올렸다.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을 공개하고 소통하는 크리에이터가 아싸일 리 없다는 악플이 달렸기 때문이다.
A씨는 영상에서 “아싸 브이로그를 올려 거짓말하고 기만질 해서 죄송하다”면서도 “대학 1학년 땐 소심한 성격에 과 동기와 어울리지 못했는데 군대 제대 후 살을 빼며 성격을 조금씩 고쳤다”고 말했다. 여기엔 “그만 좀 뺏어가. 돈이랑 빵 정도면 충분하잖아” “진짜 친구 한 명도 없는 아싸들에게 아싸 타이틀 뺏어가진 말자” 등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논란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6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진짜 아싸를 들먹이며 적당한 아싸를 공격하는 건 악플러다. 아싸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못 박음으로써 도리어 ‘진짜’ 아싸들을 비참하게 깎아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아싸 안에서도 생긴 편 가르기에 상대적 박탈감”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아싸 논쟁 안에 깃든 청년층의 특징이나 과거와 달라진 문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기성세대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힘듦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은 공감과 이해를 원하는데 자신의 처지마저도 가볍게 소비되는 행태를 보니 슬픔을 넘어 분노에 휩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싸 안에서 나름의 편 가르기가 생기면서 (청년들이) 배신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것 아니겠나”라며 “꾸밈과 거짓 없는 사회를 원하는 요즘 청년들의 특성과 맞물려 이런 반응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도서 『분노사회』의 저자인 정지우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둑맞은 아싸란 자기에게는 무척이나 절박한 문제를 패션처럼 가지고 노는 사람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온 말일 것”이라면서도 “아싸의 당연화야말로 아싸가 그리 나쁘다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고 적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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