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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총선 결과의 명과 암 짚어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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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제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표심은 ‘정부 심판론’보다는 ‘야당 심판론’에 있었다. 선거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타난 내용이었다. 선거 당일 한 방송 매체가 실시한 심층 출구조사에서도 응답자의 대다수가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매우 잘하고 있거나(29.2%) 잘하고 있는 것(44.9%)으로 평가했다. ‘국정운영에 실패한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36.3%)’라는 응답보다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41.5%)’라는 응답이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지난 3년간 나라를 망친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도록 표를 달라는 미래통합당의 ‘거대 여당 견제론’과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문재인 대통령 잔여임기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과반 정당을 만들어달라는 민주당의 ‘국정안정론’ 사이. 유권자들은 후자를 택했다.

야당심판론과 국정안정론이 압도 #팬데믹 와중의 총선을 가능케 한 #모범 사례와 시민의식에도 주목 #양당구도 회귀, 지역 할거는 우려

민주당의 승리는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사태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라 분석된다. 전통적으로 정부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중간평가’ 선거는 정권 심판의 성격을띤다. 하지만, 위기 때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결집 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와 함께 정부의 효과적인 방역 대응으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사그라들고 해외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하며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상승한 게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통합당의 패배와 관련해서는 공천 과정의 실수와 잡음 및 선거 막판에 불거진 막말 논란 등 내부 악재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수도권 중도층을 중심으로 보수에 비우호적인 정치지형이 들어서면서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야당’,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없는 야당’, ‘대안 제시는커녕 발목만 잡는 야당’을 심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대 총선에선 제3당인 ‘국민의당’의 등장으로 양당제와 지역주의 구도가 약화하는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다시 양당 구도로 회귀하면서 지역 할거(割據)가 강화되고, 거대양당 간 대립이 격화되며, 소수정당의 설 자리가 없어짐으로써 국회의 대표성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음에도 ‘다당제 확대’라는 선거법 개정 취지와 달리 비례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을 내세운 두 거대정당의 잔치로 끝나 제3정당은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다. 원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늘려야 하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으로 묶으면서 30석 ‘캡’까지 씌어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된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따라온다.

이러한 기본적인 선거 결과 분석을 넘어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코로나 와중의 총선을 통해 또 하나의 세계적인 민주주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권위주의적 모델과 대조되는 한국의 투명하고 개방적인 민주적 대응모델과 높은 시민의식에 대한 호평에 이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이 팬데믹 중에 무엇이 가능한지 또 한 번 증명하려는 듯하다”라고 평가한 영국 BBC 방송이 대표적이다. 우선 연기하지 않고 계획대로 선거를 치렀다는 점 자체가 예외적이다. 우리 언론에 이미 알려진 경우지만 미국에선 15개 이상 주에서 대선 경선이 연기되었고, 프랑스는 지방선거 2차 투표를 미뤘으며, 폴란드도 5월 10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우편투표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권위 있는 국제기구인 ‘국제 민주주의 및 선거 지원 연구원(IDEA)’ 자료에 의하면 올해 3월 1일부터 4월 15일 사이에만 전 세계적으로 최소 50개 지역에서 각종 선거가 연기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투표율이다. 이 기간에 계획대로 진행된 세계 13개 지역의 선거투표율은 뚜렷하게 줄어든 추세를 보였으며, 유일하게 우편투표를 허용한 독일 바바리아 지방선거만이 3.5% 늘어났다. 이에 비해 우리 총선 투표율은 28년 만의 최고치인 66.2%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 수준 투표율의 원인으로 사전투표제, 진영 대결로 인한 지지층 집결, 만 18세 유권자층의 참여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시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선관위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를 통해 국가 전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라는 의견이 응답자의 73.6%로 나타났으며, ‘선거에서 내 한 표는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라는 의견은 75.7%였다. 미국의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지는 이번 총선의 높은 투표율에 대해 “코로나 사태가 이런 혼돈의 시대에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 같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시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과 정치적 효능감이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