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의사들 주장] 의약분업으로 고통전담

중앙일보

입력

17일 의사들이 장외집회를 가진데 이어 다음달 중 8일간의 집단휴업을 결의하고 나섰다. 올 7월부터 시행하려는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 등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의료계가 희생을 강요당해왔다며 의료보험 진료수가를 올리고 의약분업안 몇몇 조항을 손보지 않으면 의약분업을 거부하겠다는 태세를 보인다.

의.약계는 물론 정부와 시민단체까지 참여해 도출해낸 의약분업안이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그간의 경과와 의료계.정부의 입장을 점검한다.

◇ 동네의원 경영악화〓정부는 지난해 11월 의약품 실거래가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소위 자사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제약사들이 관행적으로 의료기관에 건네주던 랜딩비나 리베이트 계약과 과도한 약가 마진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제도. 실제로 이 제도 시행으로 약값이 평균 30.7%나 내렸다.

실거래가제 시행은 약가의 거품을 뺌으로써 병.의원이 처방약 조제.판매권을 가지려는 유혹을 원천봉쇄, 의약분업을 순조롭게 시행하려는 정책의도가 담겨져 있다.

복지부는 낮아진 약값으로 생겨난 의보재정 여력으로 의료보험 진료수가를 평균 12.8% 인상하는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약값인하 폭에 비해 수가인상 폭이 좁은데다 인상된 진료수가는 각종 검사 및 처치행위에 치중돼 진찰과 약 처방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해온 소위 ´동네의원´ 들이 입은 충격이 컸다.

복지부도 이 조치로 이비인후과.산부인과.안과를 제외하고 ▶내과 42.7%▶가정의학과 27%▶비뇨기과 22%▶일반외과 17.9%▶소아과가 17.1% 가량 순익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 의료계 주장〓경영악화와 도산위기감이 의료계에 팽배하다. 이는 전국민 의료보험 체제에서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진료비가 결정되기 쉽고 의약분업까지 시행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의료계는 1998년 7월 3.5% 인상 이후 손을 대지 않아온 의보수가 전반을 인상하라고 주장한다.

또 의약분업을 위해 ▶약사들의 임의조제를 감시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고▶약사의 대체조제 전에 의사의 승인을 받는 등 내용을 약사법에 명시할 것 등도 요구하고 있다.

김재정(金在正)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일본의 8%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험요율을 올려야 함에도 국민부담을 우려해 인상폭을 늘릴 수 없다면 세계잉여금 등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 복지부〓약품 실거래가제를 시행하면서 일단 의보수가가 조정된데다 당정이 올 7월초로 예정돼 있던 의보수가 전면조정 시기를 2월 중으로 앞당기기로 했음에도 의료계가 대규모 장외집회를 가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조만간 소액진료 본인부담금제나 포괄수가제.자원기준 상대가치 수가체계.의료보험 수가계약제 등 왜곡된 진료수가 체계를 바로잡는 후속조치도 올 7월 이후 시행할 계획이어서 의사들의 주장을 상당부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수십년간 논의만 거듭해 오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시민단체의 중재까지 받아 시행키로 확정한 의약분업안에 동참했던 의료계가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강경대응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를 자극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대표성을 가진 의료계 단체가 합의한 정책에 뒤늦게 반발하는 것은 국민과 정부에 대한 배반행위로 비춰진다" 고 지적했다.

신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