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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툭하면 문경새재? '아리랑 고개' 미스터리 풀 음반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1930년대 불렸던 ‘문경새재 아리랑’을 수록한 음반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 문경아리랑 음반 확보 #1935년 명창 조앵무가 불러…최근 것에 50년 앞서 #영호남 아리랑 속 '문경새재' 미스터리 풀릴 지 관심 #문경시 "이별 상징하는 아리랑 고개는 문경새재"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 소장 중인 문경새재아리랑 SP음반. [사진 노재명 관장]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 소장 중인 문경새재아리랑 SP음반. [사진 노재명 관장]

 노재명 서울 국악음반박물관장은 1935년 명창 조앵무와 임소향이 부른 문경새재 아리랑의 가사지를 최근 서울의 한 경매장에서 확보했다고 9일 밝혔다. 2018년 이 음반 레코드판을 한 골동품상에게서 확보한 지 2년 만에 문경새재 아리랑 가사지까지 확보한 것이다.

구전으로 전승돼 오던 문경새재 아리랑은 1985년 문경시 문경읍 하초마을 주민인 고 송영철씨(2001년 작고)가 부른 것을 옛 아리랑으로 여겨왔다. 송씨는 무형문화재는 아니었으나, 당시 문경새재 아리랑을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송옥자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장이 전수받아 맥을 잇고 있다.

 노 관장은 “송영철씨가 부른 것보다 50년 앞선 음반인 데다, 당대 명창 2명이 불러 옛 문경새재 아리랑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볼 수 있다”며 “문경새재가 영·호남 아리랑 가사에 공통으로 쓰인 이유를 이 음반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문경새재는 경북 북부와 충북, 강원도가 만나는 고갯길이다. 문경새재 아리랑은 이 지역에서 불렸던 아리랑의 한 종류다. 그러나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전국에 퍼진 아리랑 가사에 문경새재가 다수 등장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문경과 관계없는 호남·경남 지역 아리랑에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 굽이 눈물이로구나’ ‘문경아 새자는 웬 고개드나’는 구절에 문경새재가 언급되고 있다. 이들 지역 아리랑에는 문경새재가 이별의 장소로 언급됐다. 경기 아리랑에서는 문경새재 대신 '아리랑 고개'를 이별의 장소로 불렀다.

 문경시는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각종 아리랑 가사에 문경새재가 등장한 것은 문경새재 아리랑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문경시 관계자는 "조선시대 말 경복궁 중건 때 일꾼들이 모인 연회에서 문경새재 아리랑이 위로곡으로 불리면서 변형된 형태로 전국에 확산했을 거란 학설이 있다"며 "고종의 외무특사였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가 1896년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에 처음 기록하면서 문경새재를 포함한 가사를 영어로 표기했다. 당시 가장 대중화한 아리랑이 문경새재 아리랑이란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 최근에 발견한 문경새재아리랑 SP음반 가사지. [사진 노재명 관장]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관장이 최근에 발견한 문경새재아리랑 SP음반 가사지. [사진 노재명 관장]

 이번에 발견된 문경새재 아리랑 음반 세트는 조앵무·임소향·오태석·정남희·조상선 명창 등 당대 최고의 국악인들이 일본 음반회사를 통해 녹음됐다. 아리랑과 매화타령, 까투리 타령, 둥개타령 등 4곳이 수록됐다. 노 관장은 “그동안 학계에서 전라도 아리랑에 왜 문경이란 지명을 가사에 넣었는지 의문이었다”며 “음반 발견으로 인해 추측으로만 여겨졌던 고유의 문경새재 아리랑의 실체가 밝혀졌다. 문경새재 아리랑이 가장 오래된 아리랑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타 지역 아리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2008년부터 문경새재 아리랑제를 개최하고 있는 문경시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고성환 문경문화원 사무국장은 “그동안 몇 가지 형태의 문경새재 아리랑을 추적해 왔지만, 모두 1980년 이후 소리라 정통성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민요의 대중화와 정형화는 음반 제작을 통해 확보된다. 음반 발견을 통해 문경새재 아리랑이 조선후기나 일제시대에 가장 많이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경새재가 다수의 아리랑 가사에 포함된 것을 보면, 이 고개가 이별의 아픔을 상징하는 아리랑 고개의 원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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